항목 ID | GC6000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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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遠杓 |
영어공식명칭 | Sim Wonpyo |
이칭/별칭 | 만취(晩翠)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문다성 |
출생 시기/일시 | 1853년 - 심원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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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39년 - 심원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46년 - 심원표 남동영당에 배향 |
수학|강학지 | 만취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본촌길 29[동호동 421] |
사당|배향지 | 남동영당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본촌길 29[동호동 421]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청송 |
대표 관직|경력 | 감역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학자.
[가계]
심원표(沈遠杓)[1853~1939]의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만취(晩翠)이며, 묵헌(默軒) 심풍(沈豊)의 13대손이다. 아버지는 심노항(沈魯恒)이며, 부인은 이응만(李應萬)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아들은 남석(南石) 심종대(沈鍾大), 손자는 주봉(注峰) 심한구(沈翰求)이다.
[활동 사항]
심원표는 1853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5~1905]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후 감역(監役)을 지냈으며, 한말 의병장인 김준(金準), 전수용(全垂鏞[庸]), 심수택(沈守澤) 등을 도왔고, 의병장을 도운 혐의로 장성 및 광주의 헌병소에 구인(拘引)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한일합병 이후 일본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고향에 은둔하였다. 또한, 심원표는 효도에 힘썼으며 만취정(晩翠亭)[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을 지어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만취(晩翠)'의 호는 심원표가 ‘만취정 소서(晩翠亭小序)’에서 이르기를 "나의 씨족인 심씨의 본관이 청송으로 되어 있고 또 송(松)이라는 나무가 언제나 울창하여 겨울 추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높은 절개를 가지고 있다. 이 정자를 남쪽에 지어 만취라고 한 것은 소나무의 이러한 절개를 본받아 나의 만년을 보내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