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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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文化遺産 |
영어공식명칭 | Cultural Heritage of the Bronze Age |
이칭/별칭 | 민무늬토기시대의 문화 유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정민 |
[정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산.
[개설]
청동기시대는 덴마크의 톰센[C.J.Thomsen, 1788~1865]이 구분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구성된 삼시대 체계[three age system] 중의 한 시대로, 신대륙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나 구대륙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대 개념이다.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한 후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금속과 배합하여 청동기를 주조하는 것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에는 단순히 석기만을 사용하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의 전문화·교역의 발달·계층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혁신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토기는 민무늬토기, 무덤은 고인돌, 집자리는 방형계나 원형계의 움집, 도구는 간석기, 무기는 간돌칼, 돌살촉과 함께 청동제 무기를 사용하였다. 사회·경제적으로는 가축의 사육, 작물의 경작 등 자연에서 얻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연을 활용하는 능동적인 생산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집단 간의 물물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었다. 청동기시대의 이와 같은 변화 발전상은 신석기혁명 이후 인류 문명화 과정의 위대한 걸음을 다시 시작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청동기시대의 상한은 기원전 2,000년대 후반 정도이며, 하한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볼 수 있다.
[생활 유적]
광주광역시의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은 주거지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반움집으로 평면 형태가 장방형, 말각방형, 원형이고. 말각방형과 원형 주거지에서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된다. 하남동 유적, 산정동 유적, 용두동 유적에서는 전기 장방형 주거지가 확인된 바 있다. 송암동, 원산리, 외촌 유적, 성덕 유적, 수문 유적, 관동 유적, 노대동 신기 유적, 금곡 유적, 용두동 유적, 매월동 동산 유적, 연제동 유적, 임암동 입암 유적 등에서는 송국리형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특히 동림동 유적에서는 이중구연단사선문(二重口緣短斜線文)에 구순각목(口脣刻目)이 시문된 토기와 고무래, 자귀 자루 등이 출토된 저습지 유구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무덤 유적]
광주광역시의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은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광주광역시에 분포되어 있는 전체 고인돌의 수는 64개군 300여 기이다. 광주광역시에서 고인돌에 대한 최초의 발굴 조사는 1978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진 충효동 고인돌 6기이다. 1996년에는 풍암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된 풍암동 풍암고인돌 1기와 금호동 망월고인돌 1기가 발굴 조사되었는데, 2기 모두 매장 시설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상석 하부에서 적석만 노출되었다. 또한 광주도심철도 이설 사업 구간 내에 포함된 매월동 동산고인돌 가군에서 고인돌 4기와 석곽 7기가 조사되었으며, 매월동 동산고인돌 나군에서는 고인돌 5기와 석곽 1기가 조사되었다. 이 외에도 신창동, 수완 지구 성덕 유적 등에서도 고인돌과 석곽(石槨),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이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