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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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甕器工藝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숙희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옹기를 재료로 하여 만드는 공예.
[개설]
옹기가 한반도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로 알려졌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번성해 장류를 보관하거나 담글 때 사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서 플라스틱 용기가 등장하면서 실생활에서 점점 덜 쓰이게 되었으나 옹기 속에서 숙성된 발효식품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광주, 전라남도의 전역에서는 옹기 제작이 성행하였다. 1930년에 발간된 『전라남도사정지』를 통하여 당시의 전라남도 지역 옹기 생산과 다양한 도기, 요업제품 등에 대한 흐름을 알 수 있다. 무안은 자기 외에 도기(陶器)와 소소물(素燒物), 함평은 요업제품, 구례는 소소기(素燒器), 강진은 도자기와 토관(土管) 생산이 활발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해남은 요업의 원료인 도토가 풍부하다고 하였는데, 도토는 오래 전부터 '해남질'이란 이름으로 전라남도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전성기는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어 당시 옹기장인들 사이에서는 "사기는 사 곱, 옹기는 오 곱이 남는다."는 말이 성행하였다. 사기그릇은 네 배의 이익이, 옹기는 다섯 배의 이익이 남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옹기장인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 재료비와 인건비 상승, 광명단 파동,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 증가 등으로 옹기산업은 1970년대 중반 이래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옹기의 현대화와 외연 확장]
광주 지역의 옹기공예는 2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도 오향종과 정희창 등에 의해 왕성하게 유지되고 있다. 오향종과 정희창은 옹기를 현대화하고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도예가로 평가 받고 있다.
오향종의 옹기는 자체로 힘이 느껴지고 자유분방하며, 무수한 반복 작업을 통해 조탁을 이룬 무위의 자연미가 느껴진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오향종은 몇 년 전까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에 제희라는 상호로 예술가의 창작 및 기획 공간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고흥군의 분청사기 입주작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창작 활동을 하였으며, 2021년에는 2년 동안 작업했던 작품들 중 4점을 기증하여 전시하고 있다.
정희창의 옹기는 실용성을 기본으로 삼으며 옹기에 나무와 금속 그리고 나전기법을 결합한 크로스오버(Crossover)의 경향을 보여 준다. 정희창은 장성군에서 창아트 옹기를 운영하며 젊은 작가들의 스승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