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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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愛順 |
영어공식명칭 | Han Ae-soo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924년 - 한애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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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2014년 - 한애순 사망 |
출생지 |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
거주|이주지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
활동지 |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
성격 | 판소리 명창 |
성별 | 여 |
본관 | 청주 |
대표 경력 |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남도판소리 보유자 |
[정의]
근현대 서편제 광주소리를 지속·전승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남도판소리 보유자.
[개설]
한애순(韓愛順)[1924~2014]은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세습 예인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한상학[1877~1939]은 해금, 가야금 악사이고, 모친 임처녀는 전라도에서 이름난 무당이었다. 오빠 한진옥은 호남 지역 명무로, 한진옥의 호남검무는 이매방류 호남검무와 쌍벽을 이루었다. 한진옥의 부인은 박요초로 판소리 명창 박동실의 여동생이다. 이러한 집안의 내력이 한애순을 판소리 명창 박동실의 제자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활동 사항]
한애순은 전라남도 담양의 지실초당과 광주권번에서 박동실에게 학습하였고, 「춘향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등을 배웠다. 1940년경에는 박석기, 박동실 등이 소속되어 있던 화랑창극단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어린 시절 학습에 이어 창극 활동까지 지속된 박동실과의 인연으로 한애순은 박동실의 소리를 가장 잘 이은 명창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애순 역시 월북 명창 박동실의 제자임을 당당하게 밝혔던 유일의 인물이기도 하다.
1953년부터 약 7년간 광주국악원[광주권번 후신]에서 판소리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1959년 이후에는 개인강습소를 설립하여 후학들을 육성하였다. 1961년 상경하여 1년간 박녹주에게 「흥보가」를 사사받고, 다시 돌아와 개인강습소를 운영하다가 1973년 광주시립국악원 개설 후 판소리 강사로 활동하였다. 1980년대에는 예술고등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한애순은 ‘목을 잘 타고 났다’, ‘붙임새가 치밀하고 정교하다’ 등의 좋은 평을 받았으나, 광주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여 전국으로 명성을 떨치지는 못하였다. 지역 활동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는 스승 박동실의 월북에서 기인한 점도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한애순의 소리를 전승하는 제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며, 이로 인하여 ‘광주판 서편제 소리’는 거의 명맥이 끊어졌다고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