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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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讀書會 |
영어공식명칭 | Reading Party |
이칭/별칭 | 독서회 중앙본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일례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3월 - 독서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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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29년 6월 중순 - 독서회에서 독서회 중앙본부로 개칭 |
최초 설립지 | 독서회 - 광주광역시 |
성격 | 항일단체 |
설립자 | 장재성 등 |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광역시에 있었던 광주 학생 항일 단체.
[개설]
1920년대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선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학생단체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고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각 학교 단위로 결성된 일종의 학생비밀결사 조직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토론하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식을 고취해 나갔다. 특히 1926년 11월 3일 장재성 등 광주 지역 학생들이 조직했던 학생비밀 결사 조직인 성진회가 1927년 3월에 그 비밀이 노출되자 표면적으로 성진회를 해체하고, 명칭을 독서회 등으로 변경하였다. 표면상 성진회를 해체함으로써 조직의 비밀이 누설되는 것을 차단하고 이를 통해 회원의 보호와 모임의 지속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설립 목적]
독서회는 사회주의 사상 연구와 보급을 통한 광주 지역 학생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조직되었다. 한편 독서회 중앙본부는 자본가 계급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사명으로 하였으며 민족독립과 사회해방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변천]
1926년 11월 3일 항일학생비밀단체인 성진회를 조직하였는데, 1927년 3월 비밀이 노출되자 해체하고 독서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29년 독서회 조직의 통일적인 지도가 필요하게 되자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장재성은 그해 6월 중순 귀국하여 이전 성진회부터 이어져 오던 광주 지역 각 학교들의 독서회 지도부 학생들을 모아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독서회 조직을 정비하였다.
1929년 6월 양림정에 있는 양파정에서 장재성, 광주고등보통학교의 김상환과 김보섭, 광주농업학교의 조길용, 광주사범학교의 송동식이 독서회 중앙본부를 조직하는 것을 합의하였고 중순경에 양림정 김기권의 집에서 김상환, 김보섭, 윤창하, 조길용, 김순복, 송동식, 강달모 등이 참석하여 독서회 중앙본부를 만들었다. 이후 독서회 중앙본부는 모임을 갖고 독서회원간의 친목과 단결을 도모하였으며 학생 소비조합을 만들기로 하고 9월 초순경에 장재성이 문방구점을 차려 회원의 회합 장소로 삼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독서회는 학교 단위로 조직하고 이를 상위 기구에 연결하여 거대 조직으로 확대시키는가 하면 학생, 일반인에 대한 교육과 선전활동을 하였다.
특히, 독서회 중앙본부는 매주 1회 정례 모임을 갖고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토론하여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독립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독서회 중앙본부는 각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여 연락 체계를 유지하고 독서회원의 친목과 단결을 도모하는 한편, 경제적인 도움을 위해 학생 소비조합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독서회 중앙본부는 민족독립과 사회해방을 목표로 하여 학교 및 사회로 진출하여 학생 및 일반인들에게 선전활동을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대표적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는 1929년 6월 무등산에서 조직되었고, 전남사범학교 독서회는 1929년 7월 수피아여학교 뒷산에서 결성되었다.
[현황]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된 학생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조사된 독서회 계열 회원들은 70여 명에 이르렀다. 광주학생운동 이후 독서회의 조직적인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의의와 평가]
광주 지역 학생들의 항일의식과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 이후 독서회 활동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1930년대 학생운동의 핵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