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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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판소리를 뿌리내리고 지역 창자들을 규합한 판소리 명창. 김창환(金昌煥)[1854~1927]은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서 출생하였고 묘소도 마을에 있다. 김창환은 집안 내림에 의하여 무업을 승계하는 세습무계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친인척 중에 판소리 명창들도 상당수 있다. 남도판소리서편제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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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산동(大山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야리(大也里)의 '대'와 가산리(佳山里)의 '산'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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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대산동 가산 고인돌군은 가산마을 남쪽 논 가운데에 인접한 야트막한 구릉 아래 평지에 있고, 대산동 가산 고인돌 나는 가산 고인돌군 맞은편 산사면 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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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대산동 대야 고인돌 가군은 대야마을 구릉 지대에 있고, 나군은 진주정씨 민묘가 조성되어 있는 노송으로 둘러쌓인 구릉 정상부에 있다. 다군은 대야마을에서 남쪽으로 300여m 떨어진 한빛노인전문요양원 서쪽 논에 있으며, 라군은 대야마을 북쪽 구릉 정상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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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던 대야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대야마을은 마을이 크다고 하여 '대몰', '댓말'이라고도 불렀다. 마을은 대(大) 자 모양을 띠고 있어 대야(大也)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야마을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일대의 도야마을에 살던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연선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아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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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고분. 대산동 우치고분은 대야마을 뒤쪽에 있는 진주정씨 문중 선산에 있다. 고분이 있는 지점은 높이 85m 부근의 구릉 사면부이며, 서쪽으로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이 인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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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재각. 사경재는 김해김씨 문중 재각으로 광복 이후 재건되었으나 제향 인물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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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자리한 교량. 해등교(海燈橋)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도에 설치된 소교량으로 대산동과 삼도동을 이어주며, 그 사이의 장성천을 건널 수 있도록 가설된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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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화암사의 사우지. 화암사(花巖祠)는 고려 후기 충신인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정몽주의 제자인 김우생(金佑生)·김문기(金文起)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이다. 김우생은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고 단종이 죽자 자결하였고, 김문기는 단종 복위 모의에 가담했다가 이개(李塏) 등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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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김우생과 김문기를 모신 사우. 화엄사(花嚴詞)는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우생(金佑生)[1372~1457]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배향한 사우이다. 김우생은 조선 태종 이방원을 도와 1400년[정종 2] 박포(朴苞)의 난[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고, 1457년[세조 3] 단종이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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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효자 김기삼을 기려 세운 비. 김기삼(金基三)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기적비(紀蹟碑)이다.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 상량문의 글은 오동수(吳東洙)가 지었다. 김기삼은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동물들이 호위를 해 주었고 시묘 지역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