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광주 송정리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석축 성터. 광주광역시 고내상성지(古內廂城址)는 1397년(태조 6년) 전라도 병영(兵營)을 설치하면서 쌓았다가 1471년(태종 17년) 전라도 강진 병영으로 옮기면서 사용하지 않은 성으로 고병영성(古兵營城)이라고도 불렀다. 고병영성과 관련된 지명이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는데, 광주비행장의 활주로는 뽕나무밭이 있었기 때문에 '성안엣들’이라...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선거이(宣居怡)[1550~1598]의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평익공(平翼公) 선형(宣炯), 아버지는 참의(參議)[조선시대 육조의 정3품 관직]로 추증(追贈)된 선상(宣祥)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송정동(松汀洞)의 지명은 강가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 '송(松)'과 물가 '정(汀)'을 썼다는 설과 송정동 들녘 둠벙 하나에 소나무가 둘러져 있어 이 둠벙에서 발원된 명칭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초기의 전라병영. 전라병영은 1397년(태조 6)부터 1417년(태종 17)까지 20년 동안 전라도 광주목에 있었던 성으로, 이후 전라도 강진으로 이영(移營)하였다. 병영이 옮겨가면서 사용하지 않은 성으로 '고병영성'이라 불리었다. 전라병영이 있던 자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이며, '고내상성지(古內廂城址)'란 이름으로 성(城)과...
1392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을 강탈당할 때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처음 사용된 이후 해양·익주·화평·무진으로 불리었으며, 목(牧)·부(府)·주(州)·현(縣) 등 등급의 변화가 빈번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광주목이 되면서 목사가 파견되는 큰 고을이 되었는데, ‘광주목’은 조선 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