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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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학자. 고광선(高光善)[1855~1934]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이다. 복헌(復軒) 고정헌(高廷憲)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고박주(高璞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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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던 개항기 사우.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였던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신 사우였다. 고광선은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북촌에서 태어났으며,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나도규(羅燾圭)[1826~1885]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길 원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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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의 묘정비. 봉산사묘정비는 봉산사의 묘정(廟庭)에 세운 비이다. 봉산사는 현와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시는 사우(寺宇)이며, 봉산사묘정비에는 봉산사의 건립 취지와 고광선의 공적, 추숭(追崇)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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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사 건립 이후 변화된 내용을 수록한 사우지(祠宇誌). 봉산사(鳳山祠)[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사당] 설립 과정과 배향 인물의 행적을 기록한 지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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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와 관계된 글을 모아 1961년에 간행된 사우지. 봉산사(鳳山祠)는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봉황산의 구릉지대에 있는 사당으로 한말 유학자 고광선(高光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고광선은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노사학파(蘆沙學派)의 한 축을 이루며 정의림(鄭義林), 오계수(吳繼洙), 박노술(朴魯述), 오준선(吳駿善) 등과 교류하였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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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가옥 및 강학소. 봉산정사(鳳山精舍) 엄이재(掩耳齋)는 고광선(高光善)이 건립하여 사용한 곳이다. 고광선은 나도규(羅燾圭)와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공부한 한학자이다. 엄이재는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 고광선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곳으로 처음에는 움막의 형태이었다. '엄이'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시끄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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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집수리 및 주거 복지 서비스 전문 사회적기업. 빛고을건설은 광주 지역 취약 계층의 주거 안정과 주거 복지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적기업으로서 광주광역시의 1호 자활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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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오동수(吳東洙)[?~?]의 본관은 금성(錦城)이며, 할아버지는 오하규(吳夏圭), 아버지는 오영선(吳泳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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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용두동(龍頭洞)의 명칭은 동의 지형이 용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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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용두동지석묘는 학동마을 동쪽에 있는 삼각산 서쪽 사면 말단부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25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군에서 서쪽으로 1.7㎞ 떨어진 곳에 영산강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여러 개소의 고인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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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유인 행주기씨의 효열비. 행주기씨(幸州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행주기씨는 기권중(奇權仲)의 딸로, 장흥고씨(長興髙氏) 고경주(高庚柱)와 혼인하여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를 하였고 남편을 섬겼다. 고광은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건립 추진위원장은 박하만, 부위원장은 기세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