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경루
-
1960년대 현대적 건축으로 건립한 전통 활터. 관덕(觀德)이란 '활과 화살을 잡음에 그 견고함을 살핀 뒤에야 적중시켰다 말할 수 있고 이로써 덕행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예기(禮記)』 제46편 '사의(射義)' 에서 연유한다. 광주 관덕정(光州觀德亭)은 사정(射亭)으로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기관으로서 1451년(문종 1)부터 1896년(고종 33)초까지 기록을 통해 광주...
-
조선 전기 학자 김종직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대상으로 지은 한시. 「광주무등산(光州無等山)」을 지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자는 계온(季昷), 효관(孝盥),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1431년에 아버지 김숙자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53년 과거에 합격한 후 경연관(經筵官), 함양군수·도승지...
-
1430년 광주목이 무진군(武珍郡)으로 강등된 사건.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처럼 읍리, 민의 수령에 대한 행패나 모반, 강상죄 등을 범하면 그 고을 자체를 폐지하거나 강등, 인근 군현에 병합시켰다. 고을의 강등은 곧 외관의 격이 강등됨을 말하며 이와 함께 읍호의 개칭도 뒤따르게 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과 기생 소매의 간통 사건과 살인자로 광주고을 사...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황화루 동쪽에 있던 정자. 봉생정(鳳笙亭)은 절양루(折楊樓)[지금의 공북루(拱北樓)], 황화루(皇華樓)와 함께 조선 초기인 1415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71년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전라도 관찰사로 지방을 순행하며 광주 지역에도 몇 차례 들렀다. 7월 28일 유희춘의 일기에 따르면, 희경루에서 관찰사인 유희춘, 병사 임진(林晉),...
-
고려 말기에 축성된 광주의 읍성과 그 사대문.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과 서남동 일부에 걸쳐 있던 광주읍성으로 고려 시대 말기에 축성하여 일제 강점기 초에 철거되었으며 사대문과 관아 시설을 갖춘 전라남도 행정의 중심지였다....
-
1392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을 강탈당할 때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처음 사용된 이후 해양·익주·화평·무진으로 불리었으며, 목(牧)·부(府)·주(州)·현(縣) 등 등급의 변화가 빈번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광주목이 되면서 목사가 파견되는 큰 고을이 되었는데, ‘광주목’은 조선 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선제의 신도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 호는 필문(蓽門)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참여하였던 집현전 학사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145...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객사인 광산관(光山館) 정문에 있었던 2층 누각. 황화루, 공북루, 봉생정, 희경루, 제금루 등은 관아의 누정이다. ‘황화(皇華)’는 고대 중국의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로 칙사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환영의 의미로 부르는 「황화곡(皇華曲)」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
조선시대 광주읍성 객사 광산관 북쪽에 있었던 2층 누각. 희경루, 공북루, 황화루, 봉생정, 제금루 등은 조선시대 광주읍성 관아의 누정이다....
-
1567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喜慶樓)에서 있었던 연회 장면을 그린 작자 미상의 계회도(契會圖). 「희경루방회도」는 1546년(명종 1) 증광시(增廣試)를 통해 벼슬길에 오른 동기생 5명이 희경루에서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참석자는 광주목사 최응룡(崔應龍), 전라도 관찰사 강성(姜暹), 전승문원부정자 임복(林復), 전라도 병마우후 유극공(劉克恭), 낙안군수 남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