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관수정(觀水亭)은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정자로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삶의 표본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후기에 광산재(廣山齋) 오응석(吳應錫)[1660~1735]이 나주오씨 오겸(吳謙)[1496~1582]을 기리는 의미로 송산동 내동마을에 세웠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사우. 광산사는 조선 중기 홍문관 우의정을 지낸 지족암 오겸(吳謙)[1496~1582]을 제향하기 위한 사우이다. 송산동 세동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하며 장방형의 대지에 전통기와 담장이고, 문간채와 사당 본채가 있다. 부지 인근에는 강당격인 금하재(錦霞齊)가 자리한다. 오겸은 오신중의 증손이며 조부는 오자치이고 오세훈이 부친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공원. 송산근린공원은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남북으로 흐르는 황룡강의 하중도에 만들어진 유원지이다. 황룡강은 영산강의 제1지류로 국가하천으로, 황룡강 물줄기 가운데에 긴 세월을 거치면서 모래와 흙이 쌓여 섬이 생겼다. 이 섬은 오랫동안 원시상태로 보존되었는데, 광주광역시 광산구는 이 섬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2006년 황룡강의 섬 597,960㎡를 공...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송산동(松山洞)의 지명은 송동리(松洞里)와 죽산리(竹山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다. 죽산(竹山)마을의 이름은 마을에 대나무가 많았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었던 세동마을에 있는 선돌.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을 제각 옆에 1기만 남아 있다.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전라도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세동마을에 높은 벼슬을 한 금향군이 살아서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선돌 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적. 광주광역시 송산동 유적은 광주광역시에서 전라남도 영광군 쪽으로 가는 국도 제22호선을 따라가다 호남대학교를 지나 1㎞ 정도 거리의 지평마을 서쪽 구릉상과 사면부에 있다. 송산동 유적은 망월평야의 남쪽 끝자락 부분에 해당하며, 북쪽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두월리에서 발원한 평리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며, 동쪽으로 1㎞ 지점에서 황룡강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옛 죽산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송산동 죽산마을 선돌은 마을회관 양쪽에 2기가 서 있다. 왼쪽 선돌은 암돌 또는 여자 선돌, 오른쪽 선돌은 숫돌 또는 남자 선돌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돌은 기단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남자 선돌은 도로 포장을 하면서 기단이 아스팔트에 묻혀 버렸다. 여자 선돌은 본래 주차장 쪽에 있었는데, 마을회관을 지으면서 회관 왼쪽으로...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 오상렬(吳相烈)[1879~1907]은 1879년(고종 16) 3월 4일 전라남도 나주목 적량면 명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인섭(吳寅燮)이다. 1906년 김태원(金泰元) 의병진에서 도통장(道統將)이 되어 전라남도 광주·함평·나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1907년에는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서 활동...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오성술이 살았던 집터. 오성술(吳成述)[1884~1910] 생가 터는 오성술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전라남도 나주군 삼가면 죽산리에 속하였으나,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으로 편입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은 '서산유씨효렬정려(瑞山柳氏孝烈旌閭)'로 불리며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다. 서산유씨 일가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자 나주목사가 조정에 추천하여 세운 정려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오성술의 묘. 오성술(吳成述)[1884~1910]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죽파(竹坡), 본명은 오인수(吳仁洙)이다. 전라남도 광산군 삼도면 송산리 죽산마을 양반 가문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익히며 한문과 유학의 기초를 닦았다. 1907년 고향마을 용진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1870~1908] 의진(義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