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립농업학교
-
근대 이후 광주광역시에 형성된 건축의 역사. 대한민국건축은 개항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많은 변화와 과도기를 경험하며 변화를 거쳐 왔다. 대한민국 현대 건축에 있어서 특히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은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이후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쳐 급격히 변화하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근·현대 건축으로 이어지는 광주 건축은 개...
-
경양방죽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를 건너기 위해 만든 흙으로 쌓은 다리가 있던 옛터. 광주 토교(土橋)는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경양방죽(景陽防―)과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던 동계천(東溪川)의 물줄기를 가로지르기 위해 설치한 교량이었다. 토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흙을 쌓아 만든 교량 시설로 물줄기는 관로를 통해 흘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에 있었던 중등 교육기관. 1909년 4월 도립광주농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동년 6월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사립측량학교' 자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일대]에서 개교하였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인 1911년 11월 도립광주농림학교에서 광주공립농업학교로 개칭되었다. 1912년에는 전라남도 광주군 기례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
일제강정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욱정에 세워진 여자 고등보통학교. 1927년 4월 현준호(玄俊鎬) 등을 비롯한 지방 주민의 요청에 따라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5월에 개교되었다. 1928년 교사(校舍)를 신축, 이전하였다. 개교 당시에는 수업연한 4년에 50명이 재학하는 여성 중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
1938년 3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에 설립되었던 초등교원 양성 학교. 1929년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가 폐교되면서 교사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따라서 1938년 광주사범학교로 재개교하게 되었다. 개교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신안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일대]에 있었던 광주공립농업학교의 일부를 사용하다 1939년 전라남도 광산군 서방면 풍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여 구속되고 고문당한 광주공립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 1926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인 장재성과 왕재일,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인 박인생 등은 식민지 교육을 반대하고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성진회(醒進會)를 결성하였다....
-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해 1959년에 건립한 기념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는 모습을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이 목격하며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항일 학생운동.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민족 차별 교육 및 식민지 노예 교육에 반대한 학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시작한 곳과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 1929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도립전남사범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전개되었다.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는 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
-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광주광역시의 역사. 근대(Modern)는 본래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지만, 대개 민족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 등 18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사조와 산업혁명이 영향을 미친 시대를 지칭한다. 한국사에서는 1876년(고옺 13)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이후인 개항기를 '근대사'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
-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독립유공자. 김기권(金基權)[1910~2005]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양림정(楊林町) 116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성진회(醒進會)와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학생소비조합을 운영하였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3.1운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유공자. 김덕순(金德順)[1901~1984]은 1901년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3월 10일과 3월 13일 광주 3.1운동 기간에 태극기 등을 광주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수천의 군중과 함께 광주천변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
-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을 전개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유공자. 김복근(金福根)[1909~?]은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우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6월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 결성하여 신사상을 연구하고,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동료 학생 200여 명과 함께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
일제강점기 광주 3.1운동을 이끈 독립유공자. 김용규(金容圭)[1898~1924]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금정 47[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용규는 남궁혁(南宮赫)의 집에서 직접 독립선언서 등을 인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3.1운동을 전개하면서 시위 인원을 동원하고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그리고 궐석(闕席) 재판에 회부되어 보안법 및 출판법...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3.1운동을 전개한 독립유공자. 김장수(金長洙)[1901~?]는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곡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에서는 작은장날을 이용하여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최한영(崔漢泳), 김복현 등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숭일학교 학생...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태열(金泰烈)[1895~?]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수기옥정(須奇屋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출생하였다. 비밀 독서모임인 신문잡지종람소 회원으로 「2.8독립선언문」과 「독립가」를 각각 인쇄하는 등 만세 시위를 준비하고, 광주 3.1운동을 계획하여 선언문을 준비함과 동시에 학생들을 동원하였다. 신문잡지종람소는 보통학교·...
-
한말 의병에서부터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농민운동으로 이어지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독립운동.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은 한말 최대 의병 항쟁지였으며,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 농민운동의 중심지였다....
-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남현(朴南炫)[1924~2005]은 1924년 10월 21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누문리 127[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서 태어났다. 박남현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에 주둔하던 중 탈출하여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배치되어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
일제강점기 민족 교육 운동가로 활동한 송홍이 무등산을 오르고 쓴 한시. 「반제서석산(伴躋瑞石山)」을 지은 송홍(宋鴻)[1872~1949]의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익중(翼仲), 호(號)는 운인(雲人)이다. 한말 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에 홍종영(洪鍾榮)·이범창(李範昌)·윤흥섭(尹興燮)·윤영섭(尹寧燮) 등과 함께 일본의 토지 침탈...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범윤두(范潤斗)[1891~1958)는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생룡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광주만세운동에 사용할 「독립선언서」, 경고문, 「독립가(獨立歌)」 등을 인쇄하는 일에 동참하였고, 장기간에 걸쳐 피신 생활을 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1919년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정광호가 「2.8 독립선언서」을 가지고 귀국하여 최한영, 박팔준, 강석봉 등 '신문잡지종람소[이후 삼합양조회로 개칭]' 청년들을 만나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1919년 2월 말 김필수 목사가 3.1운동 거사준비위원회 광주...
-
일제 강점기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 교육 운동가. 송홍은 1872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광주에서 교편을 잡은 이후,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민족의 역사와 의식은 광주학생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석비. 십신사(十信寺)는 고려 문종 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광산현(光山縣) 불우조(佛宇條)에 '십신사 재현북오리 평지유범자비(十信寺在縣北五里平地有梵字碑)'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대한제국 시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이 주도하여 설립된 숭일학교가 있던 자리. 숭일학교는 1907년 3월 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이 주도하여 설립된 근대적 교육기관이다. 설립 초기에는 비인가 학교였으나, 1908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4년제 소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초대 교장으로 프레스턴(John F. Preston...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채(李南彩)[1899~?]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독서회 회원으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 독립운동가. 임병욱(林炳旭)[1909~1988]은 전라남도 광주부 대정정(大正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으로 독서회(讀書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성진회와 독서회를 이끌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학생운동가. 장재성(張載性)[1908~1950]은 1908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금계리 56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일제강점기 성진회(醒進會)와 독서회(讀書會)를 지도하고,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학생운동 조직을 이끌었다....
-
초등교원 양성을 위해 1923년 전라남도가 설립한 공립사범학교가 있던 옛터.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전남사범학교]가 폐지된 1929년은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재학생들도 광주고등보통학교 및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당시 항일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바 있었다....
-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병소(丁炳沼)[1898~1948]는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대지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당시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으로 장날 부동교 아래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차학봉(車學奉)[1902~?]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
광복 이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좌익 문학 단체 활동을 한 시인. 최석두(崔石斗)[1917~1951]는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면 기각리[지금의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최석두(崔錫斗)이다. 1945년 광복이 된 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좌익 지하운동을 하다가 조선문학가동맹 전남지부의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최석두는 두 권의 동명 시집인 『새벽길』을...
-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순우(崔淳祐)[1899~1966]는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순오(崔順五), 최순호(崔淳祜)이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던 중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
-
일제강점기 광주농고독서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정기(崔貞基)[1913~2000]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누문리 76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독서회(讀書會) 운동에 관한 심문으로 모진 고문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정두(崔正斗)[1898~1930]는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양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최정두는 전라남도 광주로 내려와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 시위를 지휘하던 중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