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5.18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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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며 항쟁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5·18민주유공자. 윤상원(尹祥源)[본명 윤개원(尹開源)]은 노동운동가이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맡는 등 열흘간의 항쟁 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에 작곡된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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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항쟁의 유산」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과정, 항쟁 이후 역사를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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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묘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희생자들의 묘역 조성을 발표하고,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일대에 5.18민주묘역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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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기운[1962~?]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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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남석[1961~?]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사망자 수습을 돕던 중 관을 구하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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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학한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시인. 김남주(金南柱)[1946~1994]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났다. 군부독재에 항거하였던 저항 시인으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전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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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조선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던 김동수[1958~1980]는 대학생 불교연합 전라남도 지부장으로 석가탄신일 행사 준비로 분주하였다. 행사 준비로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다가 광주시에서 일어난 소식을 듣고 광주시로 돌아왔다. 옛 전라남도청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동참하던 중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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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만두[1936~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였다. 5월 20일 최루탄 가스 때문에 일이 중단되어 김만두는 출근을 안 하고 시위 현장에 나갔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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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복만[1952~1980]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내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다가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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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부열[196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김차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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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선호[1935~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청 부근 무등맨션에 거주하고 있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무등맨션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중에 확인하려고 쫓아 올라갔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아내는 강을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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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성근[195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새벽 거주 지역 주변을 순찰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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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윤수[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고 5월 23일 전라남도 화순군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가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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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두닦이를 하던 김재형[1962~1980]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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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재화[1954~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역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가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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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정선[1958~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 있는 무기고를 지키는 단기사병[방위병]이었다. 5월 21일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계엄군을 방어하기 위해 시민들이 광천동 무기고로 몰려오자 김정선은 무기고를 열었고 시민들과 함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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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종철[1962~1980]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아 하였다. 5월 27일 새벽까지 전라남도청에 남아 있던 김종철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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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나안주[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던 중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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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에 있는 약 수령 350년의 이팝나무. 도금동 이팝나무는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도촌2제 제방에 있는 수령 350년 정도 된 노거수로 남구청에서 지정한 보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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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쪽에서 광주광역시 시내로 들어오는 대로. 동문대로는 북쪽에서 광주광역시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동문대로는 담양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말바우시장과 같은 시설은 전통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담양군민들도 자주 이용하는 시장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바우시장을 활용한다. 따라서 담양군의 농어촌버스가 동문대로의 일부 구간을 통해 이동한다. 하지만 농어촌버스의 상당수는 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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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류동운[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 2학년 학생으로 서울에서 부모가 계신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시민군의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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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으며 군부독재에 항거하였던 저항 시인. 김남주(金南柱)는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수학하였다. 대학 시절 반유신 지하신문 『함성』지를 제작하여 배포하였으며, 서울로 올라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에 가입하여 조직의 신문인 『민중의 소리』을 제작하였다. 남조선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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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일대의 지형에 대한 풍수 해석. 망월동(望月洞)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으로 현재 망월동 시립묘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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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으로 유신독재와 신군부에 반대하여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을 펼친 교육자. 명노근(明魯勤)[1932~2000]은 1932년 9월 연안명씨(延安明氏) 명동열과 창녕조씨(昌寧曺氏) 조말례 사이에 5남 5녀 중 4남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죽산안씨(竹山安氏) 안기만과 진주정씨(晉州鄭氏) 정인용의 딸 안성례와 결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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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겸 시인. 문병란(文丙蘭)[1935~2015]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서은(瑞隱)이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발한 시작 활동과 사회 활동을 전개하고, 『직녀에게』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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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호남신학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문용동[195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민군으로 활동하였다. 문용동은 5월 27일까지 옛 전라남도청에 남아 시민군 무기고를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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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문재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항쟁에 참여해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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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금희[1963~1980]는 1980년 5월 당시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5월 21일 부상자 수혈을 위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온 뒤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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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있었던 들불야학 교사이자 노동운동가. 박기순[1958~1978]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1978년 6.29학원민주화시위를 주도하였고, 들불야학을 창립하여 강학을 맡았다. 또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위장 취업 학생으로 노동운동을 하며 고된 삶을 영위하다가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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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국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병규[1961~1980]는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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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성용[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옛 전라남도청에서 부상자와 사망자 수습을 돕다가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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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용준[1956~1980]은 1980년 광주YWCA 신용협동조합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투사회보』를 발행하는 팀에서 필경을 담당하였고,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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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창권[196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숭의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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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현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사상자 수습을 하는 일을 도왔다.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 박현숙은 시민군과 함께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을 지나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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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극작가이자 연출가. 박효선(朴曉善)[1954~1998]은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으로 이주하였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극단 '광대'와 '토박이'를 창립하고,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오월 삼부작' 「금희의 오월」, 「모란꽃」,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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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백대환[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전문대학[지금의 송원대학교] 1학년 재학 중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5월 23일 시신을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는 도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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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지정한 북구의 명소 여덟 곳. 2013년 12월 광주광역시 북구는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는 목적으로 북구를 대표하는 명소 여덟 곳을 선정하고 발표하였다. 이를 위하여 북구는 2013년 8월 1일부터 9월 5일까지 북구의 역사·문화자원,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생태 보전의 가치가 큰 곳을 대상으로 주민 공모를 실시하여 55개소의 후보지가 추천되었다. 이후 역사·문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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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는 1963년에 건립된 정자.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종방마을 내에 있는 삼산정사(三山精舍)는 1963년 건립되었으며, 세운 사람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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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유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서호빈[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 재학 중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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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종철[193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통장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위험을 알리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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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 살았던 손옥례[1961~1980]는 시내에 외출하고 돌아오던 중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통하는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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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2년마다 열리는 아시아문학 축제. 아시아 여러 나라는 강대국의 침략을 받고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의 문학은 식민 지배로 인하여 암울한 삶 속에서 폭력에 저항하고 아울러 평화의 염원을 기록해왔다. 세계문학의 역사는 유럽 문학을 중심으로 쓰였으며, 유럽 문학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으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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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병태[1956~1980]는 1980년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머리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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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종필[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들을 밖으로 찾아다니며 말렸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종필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항쟁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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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민석[196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근방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행방불명이 된 지 8년 뒤에야 행방불명자로 인정을 받고 무명열사로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또 21년 뒤 유전자 감식으로 무명열사들의 신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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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인섭[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참여하였다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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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창근[1964~1980]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신분으로 5.18민주화운동 시위를 하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시외버스공영터미널[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 부근에서 머리에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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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회남[1950~1980]은 자택 근처 국군광주병원 앞에 쓰러져 있는 단기사병[방위병]을 발견하고 도우려 다가갔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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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염행열[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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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항쟁 역사의 간접체험 및 탐방을 위해 5.18 사적지 27곳을 연결하여 만든 길. 광주광역시의 오월길은 오늘날의 광주를 이해하고, 광주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광주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정의를 위해 끝까지 맞섰던 저항의 현장과 신군부가 주체가 된 학살의 역사를 담은 5.18 사적지 27곳과 더불어 광주송정역, 용아 박용철 생가, 절골, 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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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에 희생된 이들을 안장하였던 곳.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라남도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시민 희생자가 나타났으며, 상무관에 안치된 희생자 129구의 시신은 5월 29일 청소차에 실려 북구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역[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역이 바로 5.18구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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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1980년대 5월,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유신세력 척결', '비상계엄 철폐' 등을 외치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항거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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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1937.7.6.~2016.1.25.]는 독일인으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상황을 듣고 김포공항으로 입국하여 택시를 이용해 광주에 잠입하여 당시 상황을 취재하였다. 취재 필름은 일본 나리타[成田] 국제공항을 통해 독일로 보내졌고, 1980년 광주 상황을 전 세계가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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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운정동(雲亭洞)의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어운리(魚雲里)의 '운(雲)'과 복정리(福亭里)의 '정(亭)'을 취하여 지어진 것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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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어운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모셨던 마을 공동 제사. 운정동 어운마을 당산제는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어운마을 사람들이 지냈던 공동 제의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모셨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중단되었다가 잠시 복원되었으나, 6.25전쟁 무렵에 완전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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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사전 제작 프로젝트 일환으로 공동 제작된 5.18민주화운동 관련 공연 작품 「One day, Maybe, 언젠가」는 영상, 설치 미술, 라이브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 예술 매체가 함께하는 복합 다원 예술 공연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고정된 무대와 객석이 아닌 연출과 참여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연극적 공간에 초대되어 관객 또한 작품 및 공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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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 있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원불교 교당 및 기관을 지원하는 교구 조직. 원불교 중앙총부와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지역의 원불교 교당 및 기관을 연결하고 지역을 관장하며 교화, 교육, 복지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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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기록 영상을 제작하여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독일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1937~2016]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카메라맨으로 입사하여 1963년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았다. 이후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에 취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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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윤상원(尹祥源)[1951~1980]의 본명은 윤개원(尹開源)이다. 윤상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맡는 등 열흘 동안 항쟁 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민군 사이에서 무기 반납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윤상원은 무기 반납 반대 입장에 서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계엄군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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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위원장. 윤영규(尹永奎)[1935~2005]는 1960년 한국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 재학 시절 4.19혁명 수습위원, 1976년 광주YMCA에서 청소년 동아리를 지도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1980년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재직 시절 5.18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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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으며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윤한봉(尹漢琫)[1948~2007]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의 전라도 책임자로 체포되었다. 이듬해 출소하여 '전남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76년에는 '부활절 예배 사건'에 연루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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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강수[1961~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은 친구의 부상 소식을 듣고 시위에 참여하여 끝까지 항쟁하다가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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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용충[1954~1980]은 1980년 5월 21일 금남로[광주광역시 동구 관내 명예도로로 지정된 유네스코 민주인권로]에서 군용 트럭에 실린 사상자들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여 항쟁하다가 광주교도소 앞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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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정연[1960~1980]은 1980년 5월 25일부터 옛 전라남도청에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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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진현[1932~?]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가 행방불명이 된 상태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아 국립5.18민주묘지에 묘비만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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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임정식[1962~1980]은 1980년 5월 22일 집에서 총소리를 듣고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한다고 밖으로 나갔고,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뒤이어 쫓아나갔다. 총성이 들리는 중에 임정식은 집 근처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달려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국군광주병원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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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재철[195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2일부터 시위대에서 활동하였다. 장재철은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사상자들을 후송하는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다. 장재철은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부상자 발생 소식이 들려와 후송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중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계엄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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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하일[1942~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1일 동생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옛 전라남도청 가까이 다다랐을 무렵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하였고, 장하일은 이때 총탄에 맞아 이틀 뒤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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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전영진[1962~1980]은 5월 21일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옛 전라남도청으로 향하였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근처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지금의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있던 전영진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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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정민구[1955~1980]는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을 순찰하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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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지영[1949~1980]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5월 20일 전남대학교에서 계엄군의 구타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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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학근[195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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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2008년에 개최한 장애인 종합 스포츠 경기 대회. 제2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전국의 장애인 선수들이 참여하는 종합 체육 경기로 광주광역시에서는 처음 개최하였다.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선수들의 기량뿐 아니라 대회 기간 내내 선수들을 지원하고 자원봉사에 참여한 광주광역시 시민과의 화합을 보여준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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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2007년에 개최한 전국적인 규모의 종합 경기대회. 제74회 전국체육대회 이후 14년 만에 광주광역시에서 개최한 여섯 번째 전국체육대회이다. 2008년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전에 치러진 종합 경기대회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기량을 점검하고자 많이 참가하였다. 지역민들도 광주광역시를 대표해 자원봉사와 시민 서포터즈 활동에 많이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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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대훈[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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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사천[194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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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던 여성 사회운동가이며 교육자. 조아라(曺亞羅)[1912~2003]는 1912년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나 기독교 장로로 계몽운동에 힘쓴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조아라는 수피아여학교 보통과[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를 거쳐 1931년 수피아여학교 고등과[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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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시인. 조태일(趙泰一)[1941~1999]은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죽형(竹兄)이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시작(詩作) 활동과 문단 활동을 전개하며 『국토』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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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채수길[195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던 중 행방불명이 되어 무명열사로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비석만 세워져 있었다. 21년 뒤인 2001년 무연고 사망자 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식 결과 채수길의 유골이 발견되어 이름을 되찾고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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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한영길[1950~?]은 1980년 5월 21일 5.18민주화운동 시위에서 시민군 트럭에 탑승해 있던 것이 목격되었다. 그 뒤 가족들이 찾아 헤맸으나 두개골 총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보지 못하였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 결과, 채수길의 시신이 확인된 뒤에 가족들은 시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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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허봉[1956~1980]은 1978년부터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들불야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15일부터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던 허봉은 5월 20일 전일빌딩[지금의 전일빌딩245] 근처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힌 뒤 대검에 머리를 찔려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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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람회.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9월 제1회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2021년 현재 제13회에 이르고 있으며, 사회문화 현실과 쟁점, 미래 가치를 반영한 주제를 선정하여 미술적 접근을 모색하는 국제 현대미술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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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 이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군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친 법조인 겸 인권운동가. 홍남순(洪南淳)[1912~2006]은 1912년 7월 20일 전라남도 능주군[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창식과 어머니 박도남의 2남 1녀 중 장남이며, 1941년 윤이정과 결혼하여 7남매를 두었다. 1957년 광주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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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성규[1947~?]는 조선대학교 출신으로 1980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1가[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학생들과 교류가 많아 불안한 시국을 잘 알고 있던 홍성규는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5월 20일 시위 중 계엄군에게 머리를 구타당한 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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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순권[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재수생이었다. 5월 18일부터 줄곧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0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숙식하며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에 계엄군이 전라남도청에 대대적으로 진입하면서 홍성규는 계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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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인표[1960~1980]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달아오르던 민주화 시위에 5월 15일경부터 참여하였다.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시에는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때, 홍인표는 형의 심부름을 나와 남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 광천주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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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황호걸[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낮에는 직장에 다니는 근로자였다. 5월 18일부터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5월 23일 황호걸은 수 명과 함께 사망자를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