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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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제작된 『1872년 군현지도』 중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전라도지도」는 1872년 대원군의 지시로 제작된 관찬 지방지도로 회화식 채색지도 형태를 취하고 있다. 1871년 대원군의 지방 읍지 상송령에 따른 후속조치로 1872년 각 지방 관아에서 개별적으로 작성한 지도이며, 전라도 광주목 지도 역시 이 시기에 납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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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 광주목에 설치하여 운영한 경양도의 역. 경양도(景陽道)는 경양역(景陽驛)을 중심으로 하여 운영된 역도(驛道)로서 광주~옥과~곡성, 광주~동복~능주 등으로 이어지는 역로를 관할하였다. 경양도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경양역 찰방(察訪)인데, 종6품직에 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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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 광주목에 설치하여 운영한 경양도의 역. 경양도(景陽道)는 경양역(景陽驛)을 중심으로 하여 운영된 역도(驛道)로서 광주~옥과~곡성, 광주~동복~능주 등으로 이어지는 역로를 관할하였다. 경양도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경양역 찰방(察訪)인데, 종6품직에 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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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 『호남역지(湖南驛誌)』에 수록된 광주목 경양역의 역지(驛誌). 경양역은 전라도 광주목 동쪽 5리[약 2㎞]에 있고 서울에서 720리[약 288㎞]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역이며, 『경양지(景陽誌)』는 경양역의 역지이다. 『경양지』에는 조선 전기 종9품 승 1인을 두었다가 1510년 찰방역으로 승격되었다는 기록과 덕기(德奇), 가림(加林), 인물(人物), 묵부(黙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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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 『조선지지자료』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관내 고개는 100여 개이고, 3할은 한글 명칭이 병기되어 있다.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충효동 북산치(北山峙), 금곡·운림동 백토[梨]치, 덕의동 접(蝶)·상대곡치(上大谷峙), 산수동 잣고개[尺峙], 화암동 늦재[晩峙], 지산동 괘일치(掛日峙), 태령동 니거릿재[四街峙], 효령동 한토치(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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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의 고려시대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 고려의 지방 제도는 983년(성종 2)부터 995년(성종 14) 사이에 본격적으로 정비되었다. 983년에는 전국에 12목을 설치해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12목이 설치된 지역은 양주·광주(廣州)·충주·청주·공주·진주·상주·전주·나주·승주·해주·황주 등이다. 이들 12주는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방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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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을 그린 옛 지도. 현재 남아 있는 전라도 광주 지역의 고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 조선 전기 그려진 지도는 모두 소축척 지도로, 국토 전체를 대상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광주는 전라도 지역에 지역명이나 작은 원 정도로만 표현되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이후에는 대축척으로 지방 행정단위인 군현을 그린 지도가 제작되면서 광주 지역의 모습이 더욱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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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던 제도. 과거제는 학문적 능력을 가려 관리를 뽑는 제도로, 고려시대인 958년(광종 9)에 처음 도입되어 조선 말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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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행정구역 변천 등을 살필 수 있는 광주목의 읍지. 백영태가 등초(謄抄)한 '『광산읍지』-고2746-2'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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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광주 지역[현 광주광역시 일대]의 별칭. 광주 지역은 백제 이래 무진주, 무주라고 불리다가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이후 광주라 불렸다. 조선시대인 1489년(성종 20), 광주가 광산으로 읍호가 강등되면서 광산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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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년에 광주목이 광산현으로 강등된 사건. 『성종실록』에 광산현 강등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 이철견(李鐵堅)이 와서 성종에게 아뢰기를, “광주 판관 우윤공은 신의 생질(甥姪)인데, 이달 초2일 밤2경(更)에 관아(官衙)로 돌아올 때, 누가 쏜 화살에 맞아 왼쪽 팔뚝을 다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전(衙前)들은 매우 경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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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지도책인 『광여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 지도. 『광여도』는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식 채색 지도를 묶은 책으로 총 38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총 7책 구성으로 광주목 지도는 3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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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킨 후 940년 무주에서 개칭한 이름. 광주(光州)는 종래 백제의 무진주라는 명칭에서 통일신라 경덕왕대에 무주라고 불렸으며, 신라 9주의 하나로서 정치·행정·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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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현대적 건축으로 건립한 전통 활터. 관덕(觀德)이란 '활과 화살을 잡음에 그 견고함을 살핀 뒤에야 적중시켰다 말할 수 있고 이로써 덕행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예기(禮記)』 제46편 '사의(射義)' 에서 연유한다. 광주 관덕정(光州觀德亭)은 사정(射亭)으로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기관으로서 1451년(문종 1)부터 1896년(고종 33)초까지 기록을 통해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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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서남단에 자리한 광역시. 1.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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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서 광주의 행정 명칭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 세종 때 만호(萬戶) 노흥준(盧興俊)이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을 구타한 사건을 계기로 광주목(光州牧)이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문종 때에 다시 복고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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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목사의 인수인계 및 광주목의 회계 관리를 위해 작성된 장부. 『광주목중기(光州牧重記)』의 저자는 미상이나, 19세기 후반 광주목 소속의 이서층(吏胥層)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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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라도 광주목의 읍지. 『광주목지(光州牧誌)』는 필사본 1책 2권이며, 책 크기는 가로 21.6㎝, 세로 34.7㎝이다. 표지를 제외하고 목록과 본문을 포함하면 92면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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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옛 시청 일대에 있던 경양방죽의 역사와 현황. 경양방죽은 15세기 수전농업을 위해 축조한 인공호수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505번지 일대 6만 5000평[약 0.22㎢]이 넘는 규모였고, 196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광주시청이 있던 곳이다. 관개 지역은 중흥·신안동 지역으로 대략 120만 평[약 4㎢]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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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북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북쪽은 공북문(拱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북문의 의미는 '북쪽을 공손히 받든다.'는 뜻인데 북쪽은 임금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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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교육기관. 향교(鄕校)는 조선 전기 지역 교육의 강화와 성리학적 질서의 보급을 위해 설치한 관학 기구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각 도의 안찰사(按察使) 들에게 향교의 흥폐를 통해 지방관의 고과를 삼을 것이며, 교학(敎學) 의 쇄신을 주문하였다. 이에 따라 부, 목, 군, 현의 각 고을에 하나씩의 향교를 세웠고, 그에 따라 광주에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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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9년 정여립의 모반으로 전라도 광주를 포함한 동인의 사림들이 다수 화를 당한 사건.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모반으로 사림세력이 화를 당한 사건으로, 약 3년 동안 1,000여 명에 이르는 동인의 사림들이 처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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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는 도구나 기구. 전통 농업사회에서 농기구는 생존의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산업은 농업 중심이 되어 왔고, 그중에서도 현재 광주광역시가 속한 전라도는 광활한 평야와 평탄한 토지를 가진 농업에 적합한 자연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어 예부터 농업이 발달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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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금곡동 일대에서 확인된 가마터. 광주 충효동 요지는 1963년 발굴된 가마터이다. 우리나라 분청사기의 변화·쇠퇴 과정뿐 아니라 분청사기에서 백자로의 이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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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목을 비롯하여 전라도 17개 고을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 『동국지도』 「병전라도지방」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지도집으로 전라도에 속하는 17개 지역의 지도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다. 『동국지도』는 같은 명칭을 쓰는 지도책이 십여 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집은 전라도에 속하는 17개 고을의 지도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와 유사한 형태로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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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년 광주목이 무진군(武珍郡)으로 강등된 사건.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처럼 읍리, 민의 수령에 대한 행패나 모반, 강상죄 등을 범하면 그 고을 자체를 폐지하거나 강등, 인근 군현에 병합시켰다. 고을의 강등은 곧 외관의 격이 강등됨을 말하며 이와 함께 읍호의 개칭도 뒤따르게 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과 기생 소매의 간통 사건과 살인자로 광주고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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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남동에 있는 광주도시철도1호선 역. 광주(光州)는 백제 때 ‘노지(奴只)’라 하였고, 통일신라 때 총독인 ‘무진도독(武珍都督)’이 설치되면서 성장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후백제 때 견훤이 도읍지로 삼으면서 광주라는 이름이 쓰였다. 고려 초에 정착한 이후 도청 주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듯한데, 이 자리는 언덕과 늪지가 만난 자리로 대황사(大皇寺)가 있었고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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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속하는 자치구. 북구 주요 지역의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용두동은 뒷산에 있는 용머리 형국, 오룡동은 용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하였고, 지야동은 지산과 대야를 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동림동의 ‘동림(東林)’은 동배마을과 죽림마을의 합성에서 비롯되었고, 두암동의 두암(斗岩)은 말바우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매곡동은 매곡동에 있었던 어매(於梅)마을과 봉곡(鳳谷)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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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에 있는 금성범씨 세거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이외의 고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중국 귀화성씨가 금성범씨(錦城范氏)이다. 금성범씨가 본디 나주목에 속하였던 복룡현[현재 광산구 평동, 삼도동 일대]에 정착한 것은, 원나라 때 고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를 배웅하여 고려에 왔다가 정착했을 때부터라고 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중국 주나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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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흥동과 서구 서창동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 광주광역시 서구에 설치된 2종 교량으로 광산구 신흥동과 서구 서창동을 이어주며, 그 사이의 영산강을 건널 수 있도록 가설된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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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의 문신 고정봉의 시문집. 『수촌집(水村集)』은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태어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문신으로 활약한 고정봉의 행적과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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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작된 『여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조선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책인 『여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책은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주목」은 이 중 3책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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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전라도 광주목의 읍지. 『여지도서』는 총 55책 구성의 필사본으로, 조선 후기 313개 지역의 지리지를 담고 있다. 개별 읍지는 2면에 걸쳐 그려진 회화식 채색 지도와 읍지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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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주광역시의 역사. 광주광역시는 삼한시대에는 마한,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백제 때 광주광역시는 무진주,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주라 불렀으며, 광주라는 명칭은 940년(태조 23)에 처음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 행정구역을 재편할 때 해양현(海陽縣)으로 강등되었다가 그 후 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화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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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과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를 연결하는 고개. 광주천이 발원하는 곳으로 '긴골'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장골〉장불재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불동(長佛洞), 『대동지지』에 장불치(獐佛峙), 『유서석록』에 장불천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5만분의 1 지형도에 장불치(長佛峙)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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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초기의 전라병영. 전라병영은 1397년(태조 6)부터 1417년(태종 17)까지 20년 동안 전라도 광주목에 있었던 성으로, 이후 전라도 강진으로 이영(移營)하였다. 병영이 옮겨가면서 사용하지 않은 성으로 '고병영성'이라 불리었다. 전라병영이 있던 자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이며, '고내상성지(古內廂城址)'란 이름으로 성(城)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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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청옥동에서 전해오는 금남군 정충신의 태몽과 출생에 관한 이야기.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은 무등산을 삼키는 꿈을 꾸었다. 정윤은 예사롭지 않은 태몽임을 직감하고 부인과 동침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관비와 동침하여서 금남군(錦南君) 정충신(鄭忠信)[1576~1636]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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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을 강탈당할 때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처음 사용된 이후 해양·익주·화평·무진으로 불리었으며, 목(牧)·부(府)·주(州)·현(縣) 등 등급의 변화가 빈번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광주목이 되면서 목사가 파견되는 큰 고을이 되었는데, ‘광주목’은 조선 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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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광주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인 광주향교의 연혁과 현황. 광주향교는 조선시대 광주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이다. 1985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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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작된 『지승』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조선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책인 『지승』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책은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주목」은 이 중 4책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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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선제의 신도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 호는 필문(蓽門)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참여하였던 집현전 학사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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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작된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光州牧)의 지도. 18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여지도』는 건(乾)·곤(坤)·보(補)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3책 중 광주목은 건(乾) 「전라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여지도』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 중이며, 2008년 보물 제159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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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18세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인 『해동지도』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책은 총 8책이며, 「광주목」은 7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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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행정기관의 권한이 미치는 구, 동으로 구분된 지역.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은 특별시, 광역시, 도,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 시, 군, 자치구, 읍·면, 동·리로 구분된다. 행정구역은 행정 기능의 분업적 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 주민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행정구역은 행정 여건 및 생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정, 보완되는데, 광역시의 경우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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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전해 오는, 조선시대에 광주목이 광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사건에 관한 이야기. 조선시대 성종 대 전라좌도 광주의 판관이 아전에게 화살을 맞은 사건을 계기로 광주목이 광산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연산군 대에 다시 복고되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