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과 동구 계림동까지 연결되어 있는 도로. 구성로는 광주광역시 남구에 소재한 구성로8번길 6[월산동 361-25] 지점을 기점으로 광주대교를 경유하여, 광주고등학교 앞을 종점으로 2차로로 개설된 도로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었던 배재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배재마을은 충장사(忠壯祠) 옆에 있던 마을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옛 화암마을에서 금곡동 배재마을로 넘어가는 무등산 자락에 있는 고개 이름이 이치(梨峙)이다. 이것이 우리말로는 배재이고, 마을 이름도 고개 이름에서 유래한다. 금곡동 배재마을 선돌은 배재마을에 있는 1기의 선돌이다. 마을의 액막이를 하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과 동구 운림동을 연결하는 고개. 바람재는 증심사에서 원효사로 가는 지름길로 북서편이 열려 있어 바람맞이가 된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과 금곡동을 연결하는 고개. 『한국지명총람』13-전남편의 금곡동에 “배재[梨峙]는 백톳재 밑에 있는 마을이고, 백톳재는 배재 서남쪽에서 화암동으로 가는 고개로 백토(白土)가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암(花岩)마을은 불바우로 불렸다는 설이 있고, 141번지에 화암동 화암 도자 가마터가 조사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자기소가 이첨(梨岾) 있다”고 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서 발원하여 청풍동, 망월동, 장등동, 운정동을 지나 증암천과 합류하는 지방 하천. 1912년 광주군 상대곡면, 하대곡면, 석저면이 1914년 석곡면으로 통합되어, 오늘날 석곡동에 이르게 되었다. 석곡천의 명칭은 석곡면에 흐른 하천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우. 영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송제민(宋齊民)[1549~1602]을 모신 사우이다. 송제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金千鎰), 양산룡(梁山龍), 양산숙(梁山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덕령 휘하에 들어가서 활약하였다. 왜적을 물리치는 방안을 적은 상소를 여러 번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 있는 수녀회.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무등원이 전신인 사회 복지 법인 소화 자매원을 운영하며 장애 여성들을 보호 및 지원하고 있는 수녀회이다. 기초 생활 훈련, 사회 재활 훈련, 심리 치료, 의료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여성 장애인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지역 사회에 적응하며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 등을 배향한 서원. 운암사(雲巖祠)는 운암서원이라고도 하며 1708년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이 배향되어 있다. 그 후 1709년(숙종 35)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제봉(霽峯) 고경명의 사촌동생이자 조선 선조 때의 유생인 창랑(滄浪) 고경리(高敬履)를...
-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된 운암사를 기리기 위해 옛터에 세운 비. 운암서원유허비(雲巖書院遺墟碑)는 운암사(雲巖祠) 창설의 의미와 배향된 인물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운암사는 임진왜란기 의병장이었던 송제민(宋齊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06년(숙종 32)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세운 사우(祠宇)이다. 이후 고경리(高敬履), 송타(宋柁),...
-
조선 중기에 활동한 무인이자 관료인 전라도 광주 출신 전상의의 신도비. 전상의(全尙毅)[1575~1627]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1603년 무과에 급제한 이후 선전관 등의 관직을 거쳐 1625년에는 구성부사(龜城府使) 겸 좌영장이 되어 북방에 주둔하였다. 1627년 일어난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안주성을 방어하다 순절하였다. 전상의 신도비는 후손들이 전상의의 생...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 장군의 무덤. 전상의(全尙毅)[1575~1627] 의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전용(全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17년(광해군 9) 오윤겸과 함께 회답사로 일본에 건너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끌려간 동포 1500여 명을 귀국시...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전상의 장군의 뜻을 기린 비. 충민공(忠愍公) 전상의(全尙毅)[1575~1627]는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으로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이후, 선전관 등의 관직을 거쳐 1625년(인조 3)에는 구성부사(龜城府使) 겸 평안도 좌영장(左營將)이 되어 북방에 주둔하였다. 1627년(인조 5) 발발한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안주...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를 배향한 사우. 충민사(忠愍祠)는 조선시대 무신인 구성(龜城)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전상의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태어났으며,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평안남도 안주군] 전투에 참여하여...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충민사 경내에 있는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무신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충절을 기려 세웠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희원(希元) 또는 환중(桓仲)이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 좌영장을 겸하였는데 적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저서로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가 전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의 비. 송제민(宋濟民)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송제민의 자는 이인(以仁),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송정황(宋庭篁)의 아들이며 정개청(鄭介淸), 이지함(李之菡)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산룡(梁山龍)·양산숙(梁山璹)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김덕령(金德齡)의...
-
광주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화암동(花岩洞)의 지명은 지형적 특징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암동의 지형은 바위와 꽃이 있다 하여 화암 또는 꽃바우라 불리기도 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었던 정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모셨던 마을 제사. 화암동 정촌마을 당산제는 정촌마을에서 8.15광복 이전까지 매년 정월대보름에 지냈다. 정촌마을 당산은 신목(神木)만 남아 있다. 화암동 정촌마을 당산제는 1999년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 발간한 『광주북구지리지』에 기록이 남아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화암동 화암 도자 가마터는 제4수원지에서 충민사로 가는 길에 송제민 유허비가 있는데 이 유허비 뒤편의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