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준공
-
노수를 도시조로 하고 노만을 파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국내 노씨(盧氏)들은 당나라에서 귀화했다는 노수(盧穗)를 도시조로, 노수의 아들이라는 9명을 각각 본과 파조로 삼고 있다. 노수와 아들들이 한반도에 건너온 것은 당나라에서 일어난 안녹산의 난 때라고 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국내 노씨 본관을 137본으로 적고 있으나 2000년 국내 인구 조사 때 52...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있는 일제강점기 광주노씨 재각. 구원재(九源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의 광주노씨(光州盧氏) 삼능단에 있는 재각이다. 광주노씨는 중국 제나라 강태공의 후손 노수(盧穗)가 755년에 안록산의 난을 피해 한반도에 건너와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노수의 큰아들인 노해(盧垓)는 광산을 봉작받아 광주에서 노수를 봉양하였으며, 이후 노해를 시조로 하여 광산을 본관으로 삼...
-
고려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평장사와 광주군에 임명된 문신. 광주노씨(光州盧氏)는 당(唐)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신라로 이주한 노수(盧穗)의 맏아들로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진 노해(盧垓)를 시조로 한다. 이후 후손들이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아 이어왔는데 광주군(光州君) 노만(盧蔓)이 광주파의 1세조이다. 노만의 후손은 노승조(盧承肇)를 파조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
-
고려 후기,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지역의 효자. 노준공(盧俊恭)[1340~1397]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심계(心溪), 시호는 절효(節孝)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노유간(盧有榦), 아버지는 판중추겸밀직사사(判中樞兼密直司事) 노사청(盧士淸)이다. 아들은 셋으로, 병조판서 노영국(盧永國), 이조참판 노영방(盧永邦), 장령(掌令) 노영...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 있는 광주노씨 세거지. 국내 성씨 중에는 본관을 광주로 쓰는 노씨(盧氏)와 광산을 쓰는 노씨가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나 『씨족원류(氏族源流)』 등은 다같이 본관을 광주라 하고, 시조를 노만(盧蔓), 노서(盧恕)로 각각 달리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사는 노씨들은 광주노씨라 하고, 광주광역시나 전라남도에...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광산노씨 재실. 일신재(日新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 있으며, 고려 후기 문신인 노준공(盧俊恭)[1340~1397]과 조선 중기 문신인 노희서(盧希瑞)[1558~1592]를 모신 사우인 절효사(節孝祠)와 같이 있다. 원래 자리에는 사우가 있었는데, 사우가 철폐되면서 일신재로 이름을 바꿨다. 일신은 대학(大學)에 있는 '苟日新日日新又日新(...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567번지에 있는 광주노씨 사우. 절효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사우로 노준공(盧俊恭)[1340-1397], 노희서(盧希瑞)[1558-1592]가 배향되어 있다. 노준공은 고려 말 인물로 장례예법이 흔들렸던 시기에 3년간 여묘살이를 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마을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 열전 효행편에 남아 있다....
-
정사조를 시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무진군(茂珍郡) 토성 항목에 13성이 실려 있고, 촌(村)성으로 유(庾)씨를 적은 뒤 속성(續姓)이라 하여 개성김씨(開城金氏), 금산정씨(錦山程氏), 고흥신씨(高興申氏), 강진최씨(康津崔氏)의 4성을 덧붙이고 있다. 이 4성은 모두 향리(鄕吏)로 못 박았던 탓인지, 권문해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
광주광역시에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잘 모시거나 죽은 후에 장례나 제사를 극진히 모신 자녀.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 제도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 규범으로서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