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오씨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관수정(觀水亭)은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정자로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삶의 표본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후기에 광산재(廣山齋) 오응석(吳應錫)[1660~1735]이 나주오씨 오겸(吳謙)[1496~1582]을 기리는 의미로 송산동 내동마을에 세웠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사우. 광산사는 조선 중기 홍문관 우의정을 지낸 지족암 오겸(吳謙)[1496~1582]을 제향하기 위한 사우이다. 송산동 세동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하며 장방형의 대지에 전통기와 담장이고, 문간채와 사당 본채가 있다. 부지 인근에는 강당격인 금하재(錦霞齊)가 자리한다. 오겸은 오신중의 증손이며 조부는 오자치이고 오세훈이 부친이다....
-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중기의 문신 오겸의 문집. 오겸(吳謙)[1496~1582]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지족암(知足菴), 또는 금양(錦陽)이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1496년에 부사(府使) 세훈(世勳)의 아들로 출생하여 서봉(西峯) 휴우(柳籍)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522년에 진사가 되고 1528년에 동부주부(東部主薄)에 올랐다. 1532년 별시문과(別試文...
-
오원을 시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본디 나주오씨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주목 토성으로 나오는 61성 가운데 하나로 나주 본관 성씨로 나주목 9대 성씨에 속하였다. 고려 2대왕 혜종(惠宗)[재위 943~945]의 어머니 장화왕후를 나주오씨 다린군(多僯君)의 딸로 기록하고 있으나 시조에 대한 언급은 없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오씨 3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상림(吳相霖), 오상림의 아들 오덕환(吳德煥)과 오직환(吳直煥), 오상림의 손자 오영기(吳永基) 등 3대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명도동 지역은 원래 조선시대에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오호석과 송시열을 모신 사우. 대명사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오호석(吳孝錫)[1620~1696]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모신 사우이다. 오호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에 항복을 하자 1637년[인조 15] 관직을 버리고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가마마을 뒤편 산으로 와서 영사재(永思齋)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서 조직된 향약계. 대촌 양과동계는 조선 시대 광주 지역의 양반과 유림들을 중심으로 교화적 사교를 위해 만든 향약계(鄕約契) 성격의 계이다. 1488년~1505년에 완성된 동적(洞籍)을 토대로 중국 진나라의 현이었던 남전(藍田)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본받아 성립된 계다. 초기 계안에 따르면 계의 가입 자격은 인근 30리[11.78㎞] 이내에 거주하는 양인(...
-
광주광역시 서구 덕흥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덕호재(德湖齋)는 나주오씨(羅州吳氏)들이 유유자적을 위해 극락강변에 건립한 초당이다. 1933년에 출간 보급되었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조선 후기의 문신 민병한(閔丙漢)이 쓴 기문이 남아 있어, 그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도덕동 상지 고인돌군은 1990년 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현재까지 변함없이 고인돌 3기가 유지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도림마을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나주오씨 세거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타나는 도림(道林)이라는 땅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 나주목에 속했던 면 이름으로, 나주오씨 집성촌인 도림(道林)마을과는 상관관계가 없었다. 오씨들이 많이 사는 도림마을은 1914년 전 나주목 삼가면에 속했던 당시 14 마을 이름 중 하나였다. 삼도면으로 통합되면...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도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1843~1915],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현재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으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66[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곡동 분토마을에 있는 서산유씨 세거지. 충청남도 서산[옛 이름 서령]을 본관으로 하는 유씨는 본디 문화유씨(文化柳氏)라고 하지만, 공민왕 때 사람 유숙(柳淑)[1316~1368]이 홍건적 토평에 공을 세워 서령군[서산의 옛 이름] 군봉을 받아서 본관을 서산이라 하였다는 집안이다. 그렇더라도 이 집안만은 이미 서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토반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은 나주오씨 선산에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299-1번지, 산22-2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이 있는 곳은 감도산 서쪽 사면 말단부로서 높이 30m 내외의 지역이다.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 서쪽 부근으로 평림천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넓은 충적지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명곡마을에 있는 나주오씨 세거지. '명곡(明谷)'은 담양 고서면 산덕리에서 살았던 오희도(吳希道)[1583~1623]의 호이다. 오희도가 태어났던 명곡마을에서 호를 땄다. 오희도는 나주오씨 8세로 영의정을 지낸 오겸(吳謙)[1496~1582] 종손이고, 아버지는 오언표(吳彦彪)이고, 친할아버지는 오겸의 동생 오원(吳謜)[1511~1596]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명곡마을 숲에 대한 풍수 해석. 명곡마을 숲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곡마을에 있는 숲으로 마을 형국이 맹호출림(猛虎出林)이기 때문에 수세의 보존과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만들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있는 조선 시대 때에 건립된 정자. 빙설당(氷雪堂)은 오이익(吳以翼)이 건립하였으나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고, 원래 초당 강학터로 사용하였다. 빙설당의 이름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묘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빙설과 같고(肌膚若氷雪) 오곡을 먹지 않으며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신다."라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고, 여기에서 빙설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내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송산동 내동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내동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나주오씨 재실. 시기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원당부락에 있는 상평공(喪平公) 오자치(吳自治)[1426~?]를 배향한 재실이다. 나주오씨 중시조라 할 오자치는 1467년[세조13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오자치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기록은 『세종실록』과 『성종실록』에 약간의 내용이 있을 뿐 그 외...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당. 식음당(息陰堂)은 1919년 오익수(吳益洙)가 오현석(吳玄錫)[1646~1708]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건립하였다. 원래 나주오씨 선산 언덕에 식음정(息蔭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자는 사라지고 오현석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변하여 식음당이라 한다. 오현석이 세운 식음정은 광산구에 석문동천(石門洞天)이라고 불리는 석문산과 주변의 노송과...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나주오씨 부인과 입절암에 관한 이야기. 「열녀 오씨 부인과 입절암 유래」는 죽은 남편을 따라 죽은 나주오씨(羅州吳氏)와 나주오씨가 순절(殉節)했던 입절암(立節岩)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재실. 영사재(永思齋)[명도동]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노당(生老堂) 오효석(吳孝錫)[1620~1697]이 은거하며 후진을 길렀던 곳으로, 사후에 오효석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효석은 광해군 때 본량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 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
-
근대기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오동수(吳東洙)[?~?]의 본관은 금성(錦城)이며, 할아버지는 오하규(吳夏圭), 아버지는 오영선(吳泳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자치 장군과 용마 바위에 대한 이야기. 오자치 장군과 장군의 용마에서 유래된 용마 바위에 대한 전설이다. 오자치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은 용마를 위해 자연석을 쪼개 용마 바위를 세웠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오자치를 기려 세운 신도비. 오자치(吳自治)[1426~?]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67년(성종 8)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발발하자 도총사(都摠使) 이준(李浚) 휘하의 군관(軍官)으로 토벌에 참가하였다. 오자치는 난이 진압된 이후 사직을 지킨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의흥위(義興衛) 호군(護軍), 평안도(平安道) 조전장(...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개항기 사우. 원당영각(元堂影閣)은 조선 전기 무관인 오자치(吳自治)[1426~?]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오자치는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책봉되고, 1476년(성종 7) 공신의 포상으로 초상화를 받았다. 1892년 영정을 보관하기 위하여 오자치의 나주오씨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원당영각을...
-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에 거주한 문신·효자. 이심기(李審幾)[1521~1545]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극중(克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연산현감을 역임한 이연(李涓), 할아버지는 이신의(李愼意), 아버지는 이발(李潑)이다. 어머니는 오암(吳巖)의 딸 나주오씨(羅州吳氏), 부인은 설전(薛巓)의 딸 순창설씨(淳昌薛氏)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개항기 나주오씨 재실. 장사재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나주오씨의 재실이다. 나주오씨는 일설에 의하면 오숙규(吳淑珪)가 분적하여 나주오씨를 이루었다고 하나, 오숙규 이후 4대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오언을 기세조로 하고 있다. 나주오씨는 나주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이후 오언 묘역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본량동, 평동 지역에 거...
-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한반도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몰려 사는 동족 마을 조사는 1930년 조선총독부 인구조사 때 이루어졌다. 이때 통계를 중심으로 일본 사람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가 『조선의 취락』을 편찬하면서 같은 혈족끼리 많이 모여 살면서 선영을 모시는 제각이나 사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운영하는 동네를 정리한 바 있다. 이후에 같은 본...
-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전기에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호족의 기원은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 귀족이나 6두품 계층, 주(州)·군(郡)의 이직자(吏職者)들, 그리고 촌의 행정을 담당한 촌주(村主)들이다. 대개는 대대로 그 지방에 토착하였던 촌주(村主) 계통의 지방 세력에서 나왔다. 구체적으로 유형을 나눠보면 ① 지방 호족(地方豪族)의 토대 위에서 신...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운동과 지정동을 연결하는 고개. 희여재는 왕건과 나주오씨[장화왕후]의 이별의 장소로 '너와의 재회를 바라는 고개'라는 의미로 희여재[希汝峙]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국지명총람』13-전남편의 평동에 “시엇재[희여재]는 평지 서쪽, 곧 지정리와 삼도면 오운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5만분 1 지형도에 희여재가 표시되어 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