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702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장섭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 지역에서 광주택시를 기반으로 운송사업으로 성장한 기업.

[개설]

창업주 박인천[전남 나주 출생, 1901~1984]은 1946년 택시 2대를 운영하는 광주택시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현 금호고속]를 설립하여 버스운송사업에 진출하였다. 1960년대 운송 관련 사업으로 크게 성장해 1973년 금호그룹이 출범하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금호홀딩스, 금호산업(주), 아시아나항공(주), 금호고속(주), 금호리조트(주), 아시아나개발(주) 등 24개사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으며 건설, 타이어, 항공, 여객운송, 유통 및 창고운수, 레저, IT 사업 부문 등 다양한 사업군을 거느리고 있다.

[창업주 박인천의 성장과정 및 활동사항]

박인천은 전라남도 나주의 농가에서 태어나 주로 광주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17세의 늦은 나이에 나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학교의 선생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학생도 상당수가 일본인이었다. 조선인 학생을 향한 차별에 분노한 박인천은 입학 이듬해 일본인 교장 배척 운동에 가담하여 퇴학을 당한다. 이후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오리강습소에서 5개월, 중동학교 초등과에서 3개월을 수학하였지만 학비 조달이 어려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낙향한 박인천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목화를 취급하는 장사를 시작하였으며 이어 잡화상, 미곡상 등 10여 가지나 되는 사업을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 후 사업을 청산하고 2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 귀국하여 1924년에 시행한 순사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 순사로 근무를 하면서도 계속 공부하여 1929년에 시행한 보통문관시험과 고등문관예시에도 합격하였다. 박인천은 2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거친 이후 46세가 되던 1946년 2월에 2대의 미제 택시로 택시회사를 설립하여 기업가의 길을 걸었으며, 2년 후인 1948년에는 2개 노선인 광주와 장성, 광주와 담양의 면허를 취득하여 버스운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운수·제사(製絲)·타이어 제조 등의 사업을 통해서 오늘날의 금호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금호그룹의 변천]

1946년 박인천이 택시 2대를 운영하는 광주택시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48년 9월 광주여객자동차[현 금호고속]를 설립하여 버스운송사업에 진출한 것이 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광주여객자동차는 1961년 6월에 전남여객자동차를 흡수·합병하여 사세를 확장하였다. 1960년 9월에는 운송사업과 함께 삼양타이어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타이어시장에 진출하였으며, 이로써 국내 수요 충당과 함께 1965년 10월부터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8년부터 흑자 경영을 이루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광주고속과 함께 향후 금호그룹을 형성하는 발판이 되었다.

두 회사를 기반으로 1970년에는 일본의 미쓰이상사 및 일본 합성고무주식회사와 합작하여 한국합성고무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이어서 1972년 10월에는 종합무역상사인 금호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무역업에도 진출하였다. 금호실업 설립 이후 그룹 체제로 발전하면서 고속버스와 타이어를 발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1973년에는 미국의 모빌석유주식회사와 합작으로 윤활유를 주로 생산하는 모빌코리아윤활유공업주식회사와 금호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 이후부터 금호그룹은 지역 기업의 수준을 넘어서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1974년에는 광주투자금융주식회사를, 1976년에는 금호산업주식회사와 금호화학주식회사를, 1977년 금호섬유주식회사와 금호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였다. 이로써 12개 회사로 구성된 금호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9년 제2차 석유파동과 국내·외적으로 불황이 겹쳐 금호전자와 금호산업은 금호실업주식회사로 흡수·합병되었고, 1984년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합병하여 주식회사 금호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이 시기 금호는 육영사업에 투자하여 일반고등학교로 금호고등학교광주중앙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실업고등학교로 금파화학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6년 9월에는 미국 유니로얄(Uniroyal)사와 타이어에 대한 기술 제휴를 맺어 타이어 제조 기술의 전문화를 이룩하였고, 1987년 3월에는 금호타이어 서울판매 외 10개 판매사를 합병하여 타이어 영업망을 크게 확장하였다. 1988년에는 대한항공에 이어 제2 민항사업자로 선정되어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며 그룹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에는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등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국내적으로는 1991년 8월 스포츠용품 브랜드 ‘포즈(POSE)’를 출품하였으며, 1992년 2월에는 민항기 타이어 부문에서 미국 F·A·A 테스트에 합격하였다. 1992년 10월에는 45시리즈 타이어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였고, 1994년 2월에는 ‘24ISO9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1996년 2월에 주식회사 금호의 상호를 금호타이어(주)로 변경하였다. 아시아나항공·금호건설·금호타이어가 주력 기업이었던 금호그룹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추고 기업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2004년에는 그룹 명칭을 금호그룹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하였고, 한국복합물류와 호남복합물류를 계열사로 편입해 물류사업에도 진출을 하였다. 또한, 2005년에는 금호타이어를 런던과 한국증권시장에 동시 상장하였다. 그러나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당시 워크아웃[기업개선절차] 상태에 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그룹이 해체 위기까지 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 1월 그룹의 모태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의 자율협약 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채권단과의 합의 하에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아 기업이 회생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015년 7월에는 법원 판결을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이 법적으로 계열 분리되어 독립 경영의 길로 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 8월 채권단의 자율협약 체제에 편입되었던 아시아나항공이 이러한 자율계약을 벗어나게 되었다. 2015년에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고속·속리산고속·금호고속관광·청도솔라 등 4개사의 지분을 인수하여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2016년 8월에는 금호터미널이 금호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금호기업은 해산되었으며, 금호터미널은 사명을 금호홀딩스(주)로 변경하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표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의 기령이 낮은 편이어서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으며, 2009년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를 시작으로 2010년 스카이트랙스, 2011년 글로벌 트래블러, 2012년 프리미어 트래블러, 비즈니스 트러블러로부터 5회 연속 ‘올해의 항공사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금호건설은 현재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면서 도시개발사업과 공항사업 등 각종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등 신흥시장 진입을 통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금호산업의 실적도 호전되었는데, 2016년에는 신규 수주액 1조 6034억 원을 달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17위였던 시공능력 평가 순위도 15위로 두 단계 성장하였다.

[주요사업 및 역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여객운송, 건설 및 레저, 항공운송, 유통 및 창고운수, 전기·전자 및 시스템 통합[SI], 제조 및 서비스 부문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객운송 부문은 1948년 광주여객을 모태로 창립한 금호고속이 사업을 수행한다. 건설 부문은 1967년 2월에 설립된 금호산업이 이끌고, 레저 부문 사업은 1989년 7월에 창립한 금호리조트가 영위한다. 금호산업은 업계 15위권의 상위 건설사이다. 항공운송 부문은 1988년에 창립한 아시아나항공, 2007년 설립된 에어부산과 2015년에 설립된 에어서울 등 항공 3사가 영위하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의 최대 주주다. 2019년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함에 따라 그룹의 항공운송 사업은 유동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주력 계열사이다. 시스템 통합[SI] 부문에는 1991년에 설립된 아시아나IDT, 2004년 5월에 창립한 아시아나세이버가 있다. 아시아나IDT는 그룹 내 항공·운송 관계사 및 국내 양대 공항공사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해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대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은 항공운수유지 업체 아시아나개발(주)과 항공화물 하역 및 지상조업 업체인 아시아나에어포트(주)가 맡고 있다.

[기업가 정신]

금호기업박인천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 '민족구원의 경제철학', '기업가적 도전성과 끈기', '기업가적 과감함과 공익 우선의 사상', '정도 경영의 신념', '경영관리자적 기업가 정신'을 따르고 있다.

[현황]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주), 금호리조트(주), 금호고속(주), 금호속리산고속(주), 에어서울(주), 아시아나IDT(주), 아시아나세이버(주), 아시아나개발(주), 충주보라매(주), 아시아나에어포트(주), 케이에이(주), 케이에프(주), 케이지(주), 케이아이(주), 케이오(주), 케이알(주), 에이큐(주), 금호티앤아이(주), 에스티엠(주), 에이에이치(주), 에이오(주) 등 24개의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고속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상 최상위에 자리한 회사로 국내 고속버스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중국, 베트남, 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등 글로벌 경영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로 연결된다. 2019년 금호산업 이사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발표하였다.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매각하면 지배구조에서 금호고속이 금호산업으로 남게 된다.

[위치]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에 있다.

[상훈]

금호기업의 상훈으로는 1976년 금탑산업훈장, 1979년 제5회 품질관리 대상, 1984년 생산성 향상 대상, 2003년 품질경쟁력 우수기업 6년 연속 선정, 2005년 무역의 날 ‘수출 10억불 탑’, 2015년 교통문화발전 대상, 2016년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16년 연속 1위, 2017년 대중교통 경영 및 서비스 평가 최우수업체, 2018년 고객만족도[KCSI] 승용차 타이어 부문 1위 14년 연속 선정, 2020년 고객이 가장 추천하는 기업 14년 연속 1위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역 기업의 한계를 벗어나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창업주 박인천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유년 시절부터 사업적인 경험을 키웠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한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운수업이라는 공공 사업에 주력하는 것을 볼 때, 그가 공익을 중시하는 기업가였으며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금호그룹의 모체가 광주여객이고 박인천 회장의 고향이 전남 지역이며, 호남 지역민들의 성원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에 호남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금호그룹은 사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도 후원 및 영재 발굴 등 각종 지원을 하고 있어 성공한 기업가의 사회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후원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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