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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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祈雨祭 |
이칭/별칭 | 무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가물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기우제는 지역에 따라 '무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명에 무제등, 무제골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대개 기우제를 모셨던 곳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농업을 기본으로 삼아 왔으며,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비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장마철에만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고 그 전후에는 가뭄이 계속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수리시설이 부족하였던 옛날에는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비였다. 광주 지역도 봄과 여름에 비가 잘 내리는 것이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연 조건이었다. 가뭄이 지속되면 누군가 하느님을 노하게 만들어서 가뭄과 같은 재앙이 발생하였다고 생각하고 하늘에 비를 내려 주길 바라며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다. 광주 지역의 기우제도 일반적인 민간신앙의 관행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연원 및 변천]
기우제의 연원을 찾아보면, 단군신화에 환웅이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인간 세계에 내려왔다는 기록에서 비에 대한 관심이 잘 드러나고 있다.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조(夫餘條)」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에서 각각 시조묘나 명산대천 등에 기우제를 올렸던 기록들이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국왕 이하 사람들이 근신하고, 천지·산천·종묘·부처·용신에게 제를 지냈다. 법회(法會)도 열어 비가 내리도록 빌고, 도교의 태일(太一)에 초제(醮祭)도 올렸다.
『고려사절요』에는 기우제를 행하는 예법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기우제의 양상이 드러난다. 선정 베풀기, 근신, 조상신에 대한 제사, 궁전 및 내전에서 제사, 불교식 제사, 영성(靈星)에 대한 제사, 무속 제사, 명산대천을 비롯한 자연신에 대한 제사, 시장 옮기기, 토룡을 만들거나 용을 그려 놓고 빌기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의 기우제가 있었다. 왕의 근신도 삼국시대보다 더욱 엄격하고 다양하여, 부채 사용 금지, 음악 금지, 삿갓 등 모자 착용 금지, 금주, 가축 도살 금지 등이 추가로 실시되었다. 무당을 모아서 비가 내리기를 빌게 하는 취무도우(聚巫禱雨)의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기우제는 잦았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기우제가 음력으로 4월에서 7월 사이의 연중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양식도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띤다. 폭로(暴露)의례, 기우제룡(祈雨祭龍), 유교식의 기고(祈告)의례 방식이 있다. 폭로의례란 기후 재변의 원인을 왕이나 무당이 제공하였다고 해서 이들을 뜨거운 햇볕에 폭로시켜 고통을 줌으로써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방식이다. 기우제룡은 물의 신인 용에게 빌어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방식이며, 유교식의 기고의례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우제 양식을 말한다.
이상은 국가가 주관한 국행 기우제이며, 민간 기우제의 경우는 문헌 사료가 거의 부재하기 때문에 역사적 변천 과정을 알기가 어렵다. 민간 기우제도 국행 기우제와 흡사하게 여러 가지 기우 주술을 겹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마을 단위별로 그 마을에서 가장 효험이 있으리라 기대되는 방식의 기우제가 실행됨과 동시에 몇 개의 마을이 합동으로 특정 지역에서 거듭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때 동참하는 마을들은 같은 기우권역에 속하는 것이 되며, 이런 경우 해당 관청의 장이 제관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민간 기우제의 양상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기도 하였다.
[유형]
기우제는 비가 내리는 효험이 있을 때까지 반복하여 지내는 특성이 있다. 의례를 지내는 제주(祭主)를 바꾸거나 제장(祭場)을 옮기고 주법(呪法)을 바꿔가며 반복하여 지낸다. 기우제에 참여하는 주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동 기원의 효력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데 기인한다. 한 지역에 여러 방법의 기우제가 전승되기도 하며, 효험이 있다고 믿는 기우제는 급속히 다른 지역에 전해져 일정 지역에 밀집된 분포를 나타내기도 한다.
기우제의 유형은 산 위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놓는 형, 동물 희생이나 인신공희(人身供犧)형, 수신(水神)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에게 기원하거나 절에서 기원하는 형, 성물(聖物)이나 성역(聖域)을 부정화(不淨化)하거나 신을 강압하는 형, 재액을 쫓아내는 형, 비가 내리는 것을 모방한 주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역 사례]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에 있는 다섯 마을[성덕마을, 신완마을, 수문마을, 통머리마을, 큰도랑질마을]이 원당산 무제등에서 기우제를 모셨는데,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걱정하여 마을 회의를 통해 기우제를 결정하고 준비하였다. 다섯 마을은 수문마을을 중심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각각 기우제를 모셨다고 한다. 북구 각화동 각화마을에서는 두암동 군왕봉에서 기우제를 모셨으며, 북구 충효동 금곡마을에서도 뒷산인 금산에서 기우제를 모셨다. 동구 용연동 용연마을은 무등산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데, 가뭄 때 기우제를 마을에서 2~4㎞ 떨어진 무등산 계곡에서 모셨다고 한다.
[현황]
광주광역시에서는 1967년과 1968년 두 해에 걸쳐 극심한 가뭄에 기우제를 지냈으나 그 이후에는 거의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중 충효동 금곡마을은 1980년대 초중반까지 기우제를 모신 적이 있으나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기우제를 모시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용수의 개발과 민간신앙을 터부시하는 합리적 사고가 확대되면서 면면이 이어져 오던 민간신앙의 하나인 기우제를 모시지 않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