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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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之湖家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지호로 81-20[지산동 27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숙 |
건립 시기/일시 | 1890년 전후 - 오지호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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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6년 - 오지호가 개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9월 - 오지호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6호 지정 |
현 소재지 | 오지호가 - 광주광역시 동구 지호로 81-20[지산동 275] |
원소재지 | 오지호가 - 광주광역시 동구 지호로 81-20[지산동 275] |
성격 | 주택 |
양식 | 우진각지붕[안채]|맞배지붕[문간채] |
정면 칸수 | 4칸[안채] |
측면 칸수 | 1칸[안채] |
관리자 | 이상실[오지호 자부] |
문화재 지정 번호 |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6호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의 창작 공간.
[개설]
오지호가는 남부 지방 농촌주택의 형태가 남아 있는 집으로,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 (吳之湖)[1905~1982]가 1953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복직하면서 광주에 정착한 이후 1982년 타계할 때까지 창작활동에 전념하던 곳이다. 전면을 보면 자연석 기단에 덤벙주초석과 사각기둥이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부엌 2칸과 우물마루를 앞에 두고 방 3칸이 나란히 있다. 배면에는 원형기둥으로 툇마루와 골방이 있다. 부연은 대나무로 엮었고 서까래는 가늘게 끝을 날려 초가에 어우러지게 하였다. 초가집 앞에는 문간채이면서 화실이 있는데 20㎡ 남짓한 크기이며, 북쪽 창과 지붕은 채광창으로 빛이 통과되도록 하였다. 바닥은 마루방으로 맞배지붕을 한 유럽 스타일의 정통 화실이다. 오지호는 이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미술이론에 대한 비판논문과 한자교육 운동, 광주 지역의 문화재 발굴을 위한 동아리 활동에 힘썼다. 지금도 오지호 가옥의 마당에는 화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소박한 풍경을 보여준다.
[위치]
오지호가는 동구 지호로 81-20[지산동 275] 광주고등법원과 지산동사무소 인근으로, 로터리에서 무등산파크호텔로 가는 길 왼편 동네 안에 있다.
[변천]
1890년대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6년에 개수공사를 하였다. 부엌에는 환기를 위한 살창과 찬장을 복원하였으며, 판장으로 된 부엌문은 옛날 것을 그대로 달았다.
[형태]
대문간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중앙에 안채가 있다. 전면 4칸 측면 1칸의 전통주택으로 단벌대로 자연석을 기단 삼고 덤벙주초석에 4각기둥을 세웠다. 뒷편으로도 마루칸과 골방이 있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디딤돌 3개가 놓였으며, 초가의 우진각지붕이다. 네모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납도리를 결구하였으며, 방문 위에는 기둥 위에 큰 나무보를 걸친 뒤 동자주를 놓았고, 종도리를 올려 놓는 일반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초가집의 구조를 볼 수 있다. 안채의 전체 구성은 왼편에서부터 보면 부엌 1칸과 우물마루를 넓게 놓은 3칸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문은 격자무늬의 문살로 창호지를 발라 정갈한 농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문간채인 오른쪽 화실의 경우는 조도를 조절하기 위하여 마당쪽으로 난 북쪽 창과 서까래를 투명하게 처리하여 밝게 채광되도록 처리하였다. 맞배지붕에 마루를 깔았다.
[현황]
오지호가는 1986년 9월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오지호의 후손이 기거하며 수시로 돌보아 정갈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편 한국 인상파로서 향토색 짙은 작업을 완성한 오지호의 작품 「남향집」이 2013년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오지호가는 남도 농가의 형태를 간직한 소박하고 단아한 건물을 그대로 간직하였고, 한국 인상파 화풍을 완성한 작가의 화실이 어우러진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