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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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喜慶樓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수경 |
[정의]
조선시대 광주읍성 객사 광산관 북쪽에 있었던 2층 누각.
[개설]
희경루, 공북루, 황화루, 봉생정, 제금루 등은 조선시대 광주읍성 관아의 누정이다.
[관련 기록]
희경루와 관련하여 신숙주(申叔舟)[1417~1475)가 1451년에 쓴 기문과 심언광(沈彦光)[1487~1540]이 1536년에 쓴 기문이 있으며, 허종(許琮), 성임(成任), 유순(柳洵), 송순(宋純), 임제(林悌), 임억령(林億齡) 등이 지은 5언시와 7언시가 전해지고 있다. 또 1567년 희경루에서 열린 연회를 그린 「희경루방회도(喜慶樓枋會圖)」가 있다.
[변천]
신숙주가 남긴 기(記)를 통해 희경루의 건립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1451년 광주목사로 부임한 안철석(安哲石)이 부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 관유(觀遊)할 장소가 없어 지역 부로(父老)들과 논의한 후 공북(拱北)의 옛터에 지었다고 한다.
안철석 목사 때 지은 희경루는 불에 타 1534년 신한(申瀚)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1686년 이항(李恒)과 1866년 안응수(安膺壽)에 의해 중수되었다.
[형태]
신숙주가 남긴 기문에 의하면 “희경루 그 칸 수를 세어 보면 남북이 5칸이고, 동서가 4칸이니, 넓고 훌륭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이었다. 동쪽으로는 큰길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긴 대밭을 굽어보며, 북쪽에는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동쪽에는 사장(射場)을 만들어 덕을 보는[觀德] 장소로 삼으니, 손님과 주인이 이제야 비로소 올라 쉬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이는 태수의 뜻을 고을의 백성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황]
희경루는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았으나, 2023년 9월 20일 광주공원에 중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