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5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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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追遠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8[압촌동 10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844년경 - 추원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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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추원각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8[압촌동 103-1] |
성격 | 재각 |
양식 | 팔작지붕 주심포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장흥고씨 |
관리자 | 장흥고씨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각.
[개설]
추원각(追遠閣)은 장흥고씨 재각으로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흥고씨는 전라남도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데 전라남도 담양 일대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후손이 유명하여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이 일문을 창평고씨라 하며 호남 사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경명은 광주 압보촌(鴨保村) 출생으로 1558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1591년 동래부사가 되었으나 서인이 실각하여 파직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에 침입한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전사하였다. 추원각은 장흥고씨 문중에서 고경명을 배향하기 위하여 고경명 가문에게 내려진 고씨삼강문(高氏三綱門) 옆에 지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8[압촌동 103-1]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추원각의 건립 연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씨삼강문이 세워진 시기가 1844년이므로 이 시기에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형태]
추원각은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의 전형적인 건축물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다.
[현황]
추원각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승훈문(承訓門)’이라는 이름이 명명되어 있다. 추원각 대청 위에는 ‘세독충정(世篤忠貞)’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항상 나라에 충성하고 올바른 마음을 굳게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고경명의 좌우명이다.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나 추원각과 입구인 승훈문은 지정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추원각은 광주 및 담양 지역에서 세력이 컸던 장흥고씨 재각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현판과 건물의 관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