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72
한자 三韓時代-文化遺産
영어공식명칭 Cultural Heritage of the Three Han states
이칭/별칭 초기철기시대의 문화 유산,원삼국시대의 문화 유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
집필자 이정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3년 - 신창동유적, 53기의 합구식 옹관(合口式甕棺) 조사

[정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삼한시대의 문화유산.

[개설]

청동기시대가 진보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B.C. 3세기경에 이르면 중국의 연(燕)나라로부터 한반도로 철기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도구의 소재로서 철이 등장하면서 가야 지역은 물론 한반도 전역이 차츰 새로운 문화적 변화를 맞게 된다. 더 이상 고인돌이 축조되지 않고, 대신에 목관묘(木棺墓)가 유행하게 된다. 또 회색 토기가 등장하며 철기 사용이 점차 보편화되어 가는 이른바 원삼국시대[삼한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원삼국시대의 문화는 청동기의 소멸과 철기의 보편화를 특징으로 한다. 철제 농구와 우경에 의한 농경이 발전하게 되는 시기로서, 생산 시설의 진보적 변화를 통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생산과 유통이 활발해져 철의 생산과 이를 매개로 한 무역을 통해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가 시작된다. 또한 소국들의 출현과 그들 간의 긴장과 견제 관계 형성은 철제 무기를 양산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한국고고학에서의 시대 구분]

한국 고고학에서는 삼한시대를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로 구분한다. 초기철기시대는 청동기시대에 이어서 새로이 유입된 철기 문화를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즉, 한반도에서는 철기의 유입과 이미 정착되어 있던 발달된 청동기 문화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초기철기 문화에 후기 청동기 문화를 포함하여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 전후까지를 초기철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원삼국시대는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시대, 웅천기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는 삼한시대,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원초삼국시대 혹은 원사시대의 삼국시대라 하여 원삼국시대라고 명명하였다. 이 시대의 실연대는 기원 전후부터 300년까지로 정의된다.

[무덤 유적]

광주광역시에서 삼한시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유적은 광주 신창동 유적이다. 광주 신창동 유적은 1963년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 의해 53기의 합구식 옹관(合口式甕棺)이 조사되었고, 평저장경호(平底長頸壺) 등의 토기류, 청동제 칼자루끝장식[검파두식(劍把頭飾)], 편평합인석부(蛤刃石斧), 유경식 돌살촉[有莖式石鏃], 쇳조각[철편(鐵片]) 등이 출토되었다. 운남동유적에서는 독무덤 4기가 조사되었는데 독무덤은 삼각형 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를 사용한 횡치 합구식 옹관(橫置合口式甕棺)으로 신창동 독무덤과 함께 영산강 상류 지역의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수완 지구 장자유적에서도 독무덤 3기가 확인되었는데 삼각형 덧띠토기를 대옹으로 덧띠가 부착되지 않은 옹형토기를 소옹으로 이용하고 있다. 관동 유적에서는 널무덤[토광묘(土壙墓)]에서 원형 덧띠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금곡 유적B에서는 독무덤 3기가 조사되었는데 타원형의 수혈(竪穴)을 굴착한 후 옹관을 안치한 형태로 단옹식, 합구식, 삼옹식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생활 유적]

광주 신창동 유적은 1963년 처음 조사된 이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지속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토기 가마, 도랑 모양의 유구[구상유구(溝狀遺構)], 주거지, 저습지 등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저습지에서는 칠기를 포함한 다량의 목제 유물과 압착된 벼껍질층이 확인되어 당시의 농경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 외에 도랑 모양의 유구, 환도 등이 조사되어 당시의 생활 전반을 알 수 있는 선사시대 최대의 농경 복합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오룡동 유적에서는 수혈 주거지 24기와 도랑 모양의 유구, 숯가마 등이 발굴 조사되었으며, 치평동유적에서는 도랑 모양의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산월동 뚝뫼 유적에서는 원형 덧띠토기와 굽다리접시 모양 토기[두형토기(豆形土器)] 등이 출토되었고, 일곡동 유적에서는 수혈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쌍촌동 유적에서는 79기의 대규모 주거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용봉동 유적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이 외에도 벽진동 월산 유적에서는 수혈 3기와 다수의 타원형 구덩이,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유물들이 혼재된 유물 포함층이 조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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