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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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允悌 |
영어공식명칭 | Kim Yoonje |
이칭/별칭 | 공로(恭老),사촌(沙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창우 |
출생 시기/일시 | 1501년 - 김윤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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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28년 - 김윤제 진사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531년 - 김윤제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72년 - 김윤제 사망 |
출생지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거주|이주지 | 환벽당(環碧堂) -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충효동 387]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광산(光山) |
대표 관직 |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나주목사(羅州牧使) |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홍문관교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김윤제(金允悌)[1501~1572]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공로(恭老), 호는 사촌(沙村)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김자침(金自沈), 아버지는 정랑과 현감을 역임한 김후(金珝)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여산김씨(礪山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윤제는 1501년(연산군 7)에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1528년(중종 23) 진사 입격에 이어 1531년(중종 26)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윤제는 숙부 김감(金瑊)과 함께 나란히 입조하여 집안을 알렸다. 직강을 비롯하여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전중어사(殿中御史) 겸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 등을 역임하였으며, 전주진영(全州鎭營)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부안군수, 나주목사, 남원도호부판관(南原都護府判官) 등 여러 외직도 경험하였다.
김윤제는 평생을 서적 간행과 유학 보급에 힘썼다. 1545년(인종 1)에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주자대전(朱子大全)』에서 중요한 구절만을 뽑아 만든 『주자문록』의 간행을 주도하였다. 또한, 현재 ‘명승’으로 지정된 환벽당(環碧堂)을 세우고 후학의 양성에도 힘썼다.
김윤제의 제자 가운데 유명한 인물로는 송강(松江) 정철(鄭澈)과 서하(棲霞) 김성원(金成遠)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맹활약한 김덕령(金德齡), 김덕보(金德普) 형제는 바로 김윤제의 증손으로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처럼 김윤제는 환벽당을 중심으로 16세기 호남 사림의 학문을 주도한 인물이다. 여기에는 기묘사화(己卯士禍)의 후유증도 고려되어야 한다. 위축된 호남 사림은 내부 결속과 교유를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에서 호남 지역의 문인들이 무등산을 중심으로 한 문학 권역을 형성하였다. 양산보(梁山甫)[1503~1557]의 소쇄원(瀟灑園), 송순(宋純)[1493~1582]의 면앙정(俛仰亭), 김언거(金彦琚)의 풍영정(風詠亭), 김성원(金聲遠)[?~1592]의 식영정(息影亭) 등이 대표적이며, 김윤제의 환벽당도 그 중심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윤제와 교유한 당대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면앙정 송순을 비롯하여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 소쇄옹(瀟灑翁) 양산보, 송천(松川) 양응정(楊應鼎), 고봉 기대승, 고암(鼓巖) 양자징(梁子澂), 서하 김성원, 송강 정철,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등이다. 특히 열거한 인물들은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 등으로 피해를 본 호남 일대의 사림을 대표하며 시대적 의식을 공유하였던 인물들로, 이들의 문학은 전체적으로 맑고 담백한 인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