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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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犀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정의]
고려 말기 광주목사 김상(金賞)[?~1389]이 광주천에 세운 정자.
[개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고적조(古蹟條)와 『광주읍지(光州邑誌)』 고적조에 기록된 석서정(石犀亭)은 돌물소[石犀]의 정자라는 뜻으로 곧 수재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정자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소 특히 물소가 능히 물을 제압하여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은 고대부터 보편적으로 존재하였다.
『동문선(東文選)』에는 이색(李穡)[1328~1396]의 「석서정기문(石犀亭記文)」이 전한다. “석서정은 매년 여름에 장마가 들면 급류가 사납게 쏠려 잦은 범람으로 가옥을 파괴하고 전답을 깎아가서 광주 사람들을 괴롭혀 왔던 광주천의 수세를 줄이기 위해 분수원(分水院)을 두어 물의 형세를 약하게 하려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석서정 건립 이후 대략 100년이 지난 조선 성종 무렵에는 이미 퇴락하였다. 광주공원 앞 광주대교 옆에 석서정이 복원되어 있다.
[위치]
『동국여지승람』 등에서는 석서정이 현의 남쪽 2리에 있다고 하였다. 광주천변 사직공원 입구 동편 언덕 위에 1914년 건립된 양파정(楊波亭)의 창건기에 양파정을 석서정 옛터에 지었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다. 이를 고려하면 석서정이 있던 자리는 양파정이 있는 바로 그 자리라기보다는 그 인근이거나 좀 더 상류 쪽의 어느 지점으로 본다. 2006년 광주공원 앞 광주천변에 현재의 석서정을 복원하였다.
[형태]
석서정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정자이다.
[의의와 평가]
광주 지역의 누정 기록은 100여 개에 달한다. 건립 시기는 대체로 여말선초(麗末鮮初)에서 조선 중·후기에 집중되어 있다. 석서정은 건립 시기가 고려 말로 다른 정자에 비하여 빠르며, 건립자, 건립 동기, 조성 형태, 명명 이유 등이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석서정은 광주 지역의 누정(樓亭) 또는 원림 문화(園林文化)의 형성 및 발전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