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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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等劇場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102-12[충장로1가 25-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별 |
건립 시기/일시 | 1955년 - 무등극장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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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74년 - 무등극장 화재로 전소 |
훼철|철거 시기/일시 | 2012년 - 무등극장 철거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8년 - 무등극장 개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0년 7월 - 무등극장 증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7년 - 광남관 개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0년대 - 광남관에서 제국관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무등극장에서 무등&밀리오레 시네마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11월 - 무등&밀리오레 시네마 4개 상영관 폐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2년 1월 - 무등&밀리오레 시네마 전 상영관 폐관 |
현 소재지 | 11번가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102-12[충장로1가 25-1] |
원소재지 | 무등극장 -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 |
성격 | 극장 |
[정의]
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서 개관한 극장.
[개설]
무등극장(無等劇場)이 들어선 자리는 그 이전부터 극장이 존재해 왔다. 무등극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55년, 두 번째는 1967년이다. 1978년부터 무등극장을 인수하여 운영을 맡은 오권수 회장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1955년부터 무등극장으로 불린 것으로 정의하였다.
[위치]
광주도시철도1호선 문화전당역 3번 출구에서 보이는 11번가 자리에 있었다.
[변천]
무등극장은 오랜 역사만큼 변천 과정도 파란만장하다. 무등극장이 건립된 자리에는 광주 객사(客舍)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광주군청이 있었다. 1927년 광남관(光南館)이 세워졌고, 1930년대에는 제국관(帝國館)으로 불리었다. 제국관은 약 670여 석의 관람석을 보유하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광주극장(光州劇場)이 개관하기 전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영화 상영 설비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유일한 극장이었다. 광복 이후 공화극장(共和劇場), 동방극장(東方劇場)으로 이름을 두 번 더 바꾸었다.
1955년 오늘날 전해지는 '무등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1974년 화재로 인해 건물이 한 번 전소되었다. 2000년 7월, 멀티플렉스 시대에 발맞추어 '무등&밀리오레 시네마'로 이름을 바꾸고, 총 13개 관[무등 7개 관, 밀리오레 5개 관]을 갖춘 광주 지역 최대 규모의 복합 영화관으로 재개장하였다. 영화관 운영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2011년 11월 8개 관 가운데 4개 관에 대해 폐업 신고를 하였으며, 2012년 1월 24일 영화 「완득이」 상영을 끝으로 전 상영관을 폐관하였다.
[형태]
5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은 1974년 화재 이후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에 좌석 간격을 1m로 만드는 공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좁다는 관객들의 의견을 수용해 2000년 의자 2400대를 틸팅(tilting) 체어로 교체하여 앞뒤 좌석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방 극장 최초로 3-way 음향시설을 도입하는 등 극장으로서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극장 내부에는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여가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휴게실과 PC코너를 만들어 두기도 하였다.
[현황]
2012년 폐관된 이후, 현재는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향토 영화관으로 한때 지방 극장이라는 편견을 깨고 연간 관객 180만 명을 유치하는 저력도 보여주었다. 결국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광주 시민들의 삶과 함께했던 극장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