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47
한자 臨流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480-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71년연표보기 - 임류정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4년 - 임류정 이전·복원
현 소재지 임류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480-8 지도보기
원소재지 임류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제주양씨 문중
관리자 제주양씨 문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개설]

임류정(臨流亭)은 1571년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이 황룡강가에 건립한 정자이다. 양응정은 성균관 대사성을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처가인 박뫼마을로 낙향하여 황룡강가에 임류정과 조양대(朝陽臺)를 세웠으며, 이곳에서 228수의 시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양응정의 호 ‘송천’은 “사람들이 양응정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소나무[후학]가 내[川]를 이룰 만큼 많이 몰려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양응정의 후학으로 신립·최경회·정운·정철·백광훈·최경창 등 조선을 대표하는 문호들이 배출되었으며, 임류정에서는 당대의 시인·묵객인 하서 김인후·고봉 기대승·미암 임희춘·석천 임억령 등이 시로써 교유하였다. 석천 임억령·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백광훈(白光勳)·최경창(崔慶昌)[1539~1583]·저촌(樗村) 이정섭(李廷燮)[1688~1744]·시서(市西) 김선(金璇)[1568~1642]·귀천(歸川) 이정기(李廷夔)[1612~1671] 등이 지은 임류정원운(臨流亭原韻)·차운(次韻)의 시(詩)·기문(記文)이 전한다. 옛자리에 있던 임류정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양씨삼강문 앞에 이건(移建)한 임류정 정자 내에는 대서현판과 시문을 번역·해석한 편액이 4장 걸려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영광, 함평 쪽으로 가다가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과 호남대학교를 지나 송산교를 건너기 전에 송산유원지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첫 마을인 광산구 박호동이 나온다. 마을 입구의 양씨삼강문 바로 앞에 임류정이 있다.

[변천]

임류정은 조양대와 함께 황룡강가에 세워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터만 남았는데 후손들이 옛터에 철근콘크리트로 세웠다. 전통적 건축 양식 고유의 곡선미를 느끼기엔 부족하며, 옛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정자명을 쓴 편액과 1998년에 후손이 쓴 복원기만 걸려 있다. 2009년 발행된 광산문화원의 기록에서도 황룡강가에 텃자리만 남아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현재 양씨삼강문 앞에 있는 임류정은 1994년에 이전·복원된 것이다.

[형태]

임류정은 세벌대 기단에 계단을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에 디딤돌 두 개를 양쪽으로 놓아 중앙으로 출입하지 않게 되어 있다. 원형 주초석, 원형 기둥,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골기와를 얹었다. 임류정은 방이 없이 전체를 개방된 마루로 구성하였는데 마루 끝의 머름대는 마루 측면에서 그대로 위쪽으로 올려 낮은 경계로 삼았으며, 중앙 진입부만 빼고 4면으로 둘러 단순하게 설치하였다.

[현황]

임류정박호동 입구 양씨삼강문 앞으로 이전·복원되었으며, 이곳에서 매년 ‘한말 호남의병 추모제 및 어등산 의병의 날 기념식’이 진행된다.

[의의와 평가]

임류정은 16세기 걸출한 호남 문인들의 학문적 교류와 나라의 위난(危難) 시 충절을 다한 장소로 그 의미가 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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