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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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光州聖居寺址五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Five-story Stone Pagoda of Seonggeosa Temple Site, Gwangju(Presumed) |
이칭/별칭 | 광주 서오층석탑,성거사지 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38번길 7[구동 16-2]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염승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0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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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1년 -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해체·수리 |
현 소재지 |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38번길 7[구동 16-2] |
성격 | 석탑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약 7.6m[높이]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제109호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개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傳光州聖居寺址五層石塔)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있는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된 신라계 석탑이다. 높이는 약 7.6m로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큰 세장형(細長型) 석탑이다.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光州芝山洞五層石塔)과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 동·서 오층석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로인해 한 사찰 내의 쌍탑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두 탑은 아무 연관이 없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 서오층석탑, 성거사지(聖居寺址) 석탑이라고도 한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광주공원 안에 있다.
[형태]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높이 약 7.6m로 1961년 해체·수리할 때 1층 탑신 받침과 3층 옥개석 일부를 새로 만들었다. 상륜부는 완전히 사라졌다. 기단부는 단층기단으로 총 2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기단부는 지대석 8매, 면석 12매, 갑석 4매로 구성되었다. 지대석과 기단저석은 한 돌로 이루어졌다. 지대석은 판석식 H자형 결구법으로 결구되었으며, 면석은 판석식 엇물림 변형으로 결구되었다. 갑석은 '전(田)'자형으로 이루어졌다. 면석 각 면에는 2개의 우주(隅柱)와 1개의 탱주(撑柱)가 돋을새김되었다. 갑석은 각형(角形)의 부연(附椽)이 있다. 부연은 갑석보다 두껍다. 2단의 각형 1층 탑신 받침은 별석이다. 지대석의 상단에는 뚜렷한 우동(隅棟)이 있다.
탑신은 5층이다. 탑신과 옥개는 1층 탑신을 제외하고 모두 각각 한 돌로 이루어졌다. 1층 탑신은 총 5매로 상하로 나뉘었다. 하부 탑신은 4매, '전(田)'자형으로 이루어졌고, 상부 탑신은 1매이다. 하부 탑신의 내부는 적심(積心)[기단 내부를 채운 돌무더기]이 되어 있다.
탑신의 각 면에는 2개의 우주가 돋을새김되었다. 2~5층 탑신 받침은 모두 2단 호각형(弧角形) 받침이다. 하단의 호형(弧形) 받침은 아주 낮고 상단의 각형 받침은 높다. 노반(露盤) 받침은 1단 호형 받침이고, 2~4층 탑신 받침과 마찬가지로 아주 낮다. 옥개 받침은 모두 4단이다.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고, 전각의 반전은 완만하다. 처마는 전각부에서 살짝 반전한다. 우동(隅棟)은 뚜렷하다.
물끊기 홈은 없으며, 삽입형 풍탁공(風鐸孔)이 있다. 5층 옥개석의 상면에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상륜부는 모두 사라졌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지대석의 외곽에 탑구와 같은 시설물이 있으나, 이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없다. 다만, 1984년에 찍은 사진을 통해서 1984년까지는 이와 같은 시설물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광역시의 석탑 중 유일하게 1층 탑신이 상하로 나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호남의 고려시대 신라계 석탑 중 1층 탑신이 상하로 나뉜 석탑은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靈巖月出山龍巖寺址三層石塔)이 유일하다. 두 탑의 1층 탑신 구성의 차이는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탑신 하부가 4매로 구성되었으며, 내부에 적심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광주광역시의 석탑 중 유일하게 1층 탑신 받침이 별석으로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받침이 아주 두꺼우며, 특히 갑석의 부연은 갑석의 두께와 거의 비슷하다. 갑석과 갑석 부연의 두께가 거의 비슷한 석탑으로는 신룡동오층석탑(新龍洞五層石塔)이 있다. 두 탑은 모두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탑으로 오해받는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광주 동오층석탑]과 비교하였을 때 기단부 탱주 수, 1층 탑신의 구성, 탑신 받침의 표현 등을 통하여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보다 늦은 시기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탑은 정혈(釘穴)의 위치와 수가 같은 점이 주목된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지대석의 외곽에 탑구와 같은 시설물이 있으며, 이는 원래의 탑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기술이 제각각이어서 혼선이 있다. 『전라남도의 석탑 Ⅰ』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291쪽에서 "여러 장의 판석으로 조성된 지대석 위에 높직한 각형 2단의 받침을 각출(刻出)하고 그 위에 기단면석을 올려놓았다."라고 하였고, 293쪽에서는 "기단부는 면접기한 지대석 위에 면석을 올리고 그 위로 부연이 있는 갑석을 올린 가구식 단층기단이다."라고 하였다. 『전남의 석탑』에서는 "넓게 구획된 지대석 위에는 큼직한 이중의 받침이 있어 기단을 받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넓게 구획된 탑구와 같은 시설물은 탑과 상관이 없고,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최하부는 지대석과 기단저석이 한 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의의와 평가]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신룡동오층석탑, 광주 장운동 오층석탑(光州長雲洞五層石塔)과 더불어 양식적으로 우수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특히 세 탑 중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1961년 해체·수리 당시 2층 탑신 상면에서 사리함(舍利函), 사경(寫經), 동경(銅鏡), 옥류(玉類) 등이 발견되었는데, 원형이 유지되어 있어 매우 귀중한 사례이다. 원형이 온전히 보존된, 양식적으로 뛰어난 사리기(舍利器)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부분적으로 독특한 점이 있지만, 고려시대 석탑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석탑으로 접근성도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