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27
한자 高傅敏
영어공식명칭 Go Bumin
이칭/별칭 무숙(務叔),탄음(灘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 고부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42년연표보기 - 고부민 사망
성격 의병
성별
본관 장흥(長興)
대표 관직 군기유사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의병장.

[가계]

고부민(高傅敏)[1577~1642]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무숙(務叔), 호는 탄음(灘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중영(高仲英)이며 할아버지는 고경조(高敬祖)이다. 아버지는 고성후(高成厚)이고, 어머니는 박성정(朴星精)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부인은 김온덕(金蘊德)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고, 아들은 고두경(高斗經)이다. 딸은 박상현(朴尙玄)에게 시집갔는데, 외손은 박광일(朴光一), 박광원(朴光元)이다.

[활동 사항]

고부민은 1577년(선조 10)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강항(姜沆)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문학과 행실로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이 고순후(高循厚)를 호남 의병장으로 천거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고부민은 의청(義廳)의 군기유사(軍器有司)가 되어 유평(柳坪)과 종형(從兄)인 고부립, 고종제, 고부필 등과 함께 군사와 군량을 모아 완산(完山)에 이르렀으나 화의(和議)가 성립되어 되돌아왔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어 사방의 군사들을 징집하여 도울 것을 명하자, 고부민은 뜻을 함께하는 여러 의병들과 함께 병사와 양식을 모아 청주(淸州)에 이르렀으나 역시 강화(講和)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왔다. 이후 은둔하다가 1642년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고부민의 저술로는 후손 고재철이 발문(跋文)을 써서 1979년에 간행한 『송학세고(松鶴世稿)』가 전한다. 『송학세고』고부민의 시문이 권1을 이루고, 아들 고두경의 시·서가 권2에 실려 있다.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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