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천리
-
경기도 구리시 교문1동 관할 행정 기관. 구리시를 구성하고 있는 8개의 동 중 교문1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구리시 교문1동 주민들에게 필요한 행정 업무와 민원 업무,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양주군 구지면 지역을 구지면의 이문동과 배교리 전부, 인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교문리라는 지명으로, 아차산과...
-
경기도 구리시 교문2동 관할 행정 기관. 구리시를 구성하고 있는 8개의 동 중 교문2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구리시 교문2동 주민들에게 필요한 행정 업무와 민원 업무,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교문2동 주민센터는 법정동으로는 교문동, 행정동으로는 교문2동에 속한다. 1914년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
경기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시. 구리시는 경기도 중앙부에 위치한 시이다. 서쪽으로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 등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특별시 강동구, 동쪽과 북쪽은 경기도 남양주시, 동남쪽은 경기도 하남시와 접경을 이룬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 06′ 05″[구리시 교문동] - 127˚ 10′ 25″[구리시 토...
-
경기도 구리시를 구성하는 지역의 옛 행정 구역 명칭. 지금의 구리시는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과 망우리면이 통합되면서, 각각 한 글자씩 딴 양주군 구리면에서 시작하였다. 구리시에 해당하는 대부분 지역은 과거 행정 구역상 구지면에 포함되던 지역이다. 구지는 육지가 강이나 바다로 돌출한 지역을 일컫는 '곶'이라는 말에서 변형되었다. 지금의 구리시...
-
개항기인 1864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의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19세기 조선은 내적으로 세도 정치와 신분제 동요 등의 변화를 겪고 있었고, 외적으로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서양 문물의 수용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을 한 조선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미개혁 등을 실시하였지만, 결국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다....
-
경기도 구리시를 포함한 조선 전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1919년 3월에 행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경기도 구리 지역의 3·1운동으로는 1919년 3월 13일 구리면 평내리 구장 이승익 주도의 만세 시위, 3월 14일 구리면 평내리 주민 150여 명의 행진, 3월 28일 구리면 아천리 이강덕과 심정봉 주도의 만세 시위가 있었다. 1919년 3월 중...
-
여러 대(代)에 걸쳐 경기도 구리시에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姓氏). 17세기경 구리 지역에 집성촌(集姓村)이 형성되었을 때 지금의 구리시는 경기도 양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구리시의 세거 성씨에 관한 기록은 1934년 조선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氏)』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경기도지(京畿道誌)』 양주군 구리면에서 소개되고 있다. 최...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서 태어나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심점봉(沈點奉)[1893~?]은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九里面) 아천리(峨川里)[현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지역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항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3·1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3월 28일 오후 5시 심점봉은 같은 마을에 사는...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다리. 아천교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워커힐 방향에서 구리시 교문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아천교의 명칭은 아천교가 위치한 아천동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아천동은 옛 양주군 구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아차동(柳옳洞)과 우미천리(牛尾川里) 전부, 토막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아차동의 ‘아’ 자와 우미천리의...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법정동. 아천동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때 아차동과 우미천리 전부, 토막리 일부가 합쳐져 아차동의 '아(峨)'와 우미천리의 '천(川)'을 따서 아천리라는 이름으로 구리면에 편제되었다. 아천동에는 아치울·우미내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서 아차산을 끼고...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구리시의 역사. 경기도 중부에 위치해 있는 구리시는 삼국 시대에는 백제·고구려·신라에 속했고, 고려 시대에는 양주·남경·한양부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양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구지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구리면이 되었다.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가 확장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은 인창리 등 7개 리로...
-
경기도 구리시 출신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강덕(李康德)[1892~1955]은 일제 강점기에 면서기로 재직하던 중 발생한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 때 구리 지역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독립 만세 시위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통령 표창과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이강...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강덕의 묘. 이강덕(李康德)[1892~1954]은 구리시 아천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전국에서 3·1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3월 28일 오후 5시 아천리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아천리·토평리·교문리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7월 3일 고등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
경기도 구리시와 관련된 인문지리적 요소. 경기도 구리시는 우리나라의 중서부에 있는 경기도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다. 동쪽과 북쪽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와 왕숙천을 경계로 접하고, 서쪽으로는 서울특별시 노원구·중랑구·광진구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하여 서울특별시 강동구와 마주하고 있으며, 인창동·교문동·갈매동·수택동·아천동·토평동·사노동 등의 7개 동으...
-
한반도가 일제에 강제 점령되었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일제는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을 바탕으로 조선을 통치하였으며, 이에 대해 한민족은 3·1독립만세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만주무장항쟁 등으로 대항하였다. 이 시기 구리 지역은 1914년 면리제 시행에 따라 구리면(九...
-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구리시의 역사와 문화. 1945년 광복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6·25 전쟁, 남북 분단, 새마을 운동과 경제 개발을 수반한 산업화,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구리 지역도 1963년 서울특별시 확장 때 지역 편제를 거쳐 1973년 남양주군 구리읍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