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암리
-
1989년에 간행된 문인 학자 김순동의 문집. 김순동(金舜東)[1898~1972]은 가학을 전수받아 한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윤용구(尹用求)에게 서법을 익혀 명필로서 명성이 높았다. 광복 후, 국학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여 국학을 강의하였다. 6·25 동란 후 대전에 거주하며 충남대학의 창설에 기여하였고, 교수로 부임하여 한문학, 국사학, 서예를 가르쳐 많은 후학을 양성하면...
-
공암 1리는 현재 6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파출소와 지방도로 변의 면소재지동, 장터마을, 서원마을, 연정마을, 양지말, 길만동이 그것인데, 면소재지동은 면사무소가 들어서면서 새로 생긴 곳이요, 장터말은 일제시대에 장이 서면서 만들어진 자연마을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그 외 4개의 자연마을이 합쳐 한 마을을 형성하였다. 면소재지 동은 공암리 합동정류소와 파출소가 있는...
-
공암1리 마을 입구석(入口石)에서 마을쪽으로 약 20m를 가면 공주시 반포면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게이트볼장이 있다. 이곳에는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친구들과 모여 게임을 즐기기 위해 모이는 공주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게이트볼장은 15년 전에 공암리 주민 몇몇이 돈을 모아 야외용으로 만들어서 이용해 오던 것을 2006년 4월에 공주시에서 4천만원을 들여 야외용 게이...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와 하신리 사이에 있는 산. 조선 중기의 대학자 고청(孤靑) 서기(徐起)의 호를 따라 고청봉이라 이름을 지었다 하고,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서기가 고청봉 아래에 살아서 호가 고청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금강을 경계로 남쪽 지방에서는 화강암류가 우세하게 나타나는데 고청봉 일대 역시 이러한 화강암류가 잘 나타난다. 서쪽 사면으로는...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자연 동굴. 공암리라는 지명은 구멍 뚫린 산인 공암굴에서 유래되었다. 공암굴은 반포면에서 서고청굴 또는 고청굴로 불리는데, 이는 공암굴과 조선 중기 학자인 고청 서기와의 인연 때문이다. 고청 서기가 지리산 홍운동에서 가서 학문을 연구하고 있을 때 사향 심상공 충청감사가 편지로 계룡산 북방 고청봉 아래 공암에 와서 후학 양성...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옆에 공암굴(孔岩窟)이라는 큰 굴이 있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반포면(反浦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의 공암리(孔岩里)·중산리(中山里)·덕곡리(德谷里)·연정리(蓮亭里)·서원리(書院里)·길만리(吉滿里)가 통합되어 공암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반포면 공암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전날인 14일에 탑제와 장승제가 치러진다. 공암리에는 매년 탑제를 올리는 ‘탑할머니(보살탑)’와 3기의 선돌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탑과 선돌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굳게 믿어, 마을굿의 신앙 대상물로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용수천(龍水川)의 범람을 막기 위하여 세운 탑. 공암리 할머니탑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용수천이 수시로 범람하는 것을 막아주겠다는 현몽(現夢)을 받아 모시게 된 보살할머니를 모신 탑이다. 일명 ‘할머니탑’이라고도 부른다. 계룡산에 인접한 공암리의 마을 앞에는 계룡산 발원의 용수천이 있는데, 비가 내리면 수시로 범람...
-
공암은 부수 작물조차 없는 대부분 논농사 위주의 농촌마을이다. 이런 가운데서 공암에서 유일하게 상품작물인 토마토 농사를 시작한 김응천씨의 신식 농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응천씨(52)는 3년 전에 토마토농사를 시작하였다. 부산에서 부인과 조그만 식당을 경영하였으나 다른 지방에서 토마토농사를 지어 성공하고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3년 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공...
-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는 시. 차령산맥 일부가 공주시의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무성산[613.6m]·국사봉[590.6m]·금계산[574.8m]·갈미봉[515.2m] 등의 산들이 사곡면·정안면·유구읍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공주시의 북부 지역은 비교적 높은 산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남동 지역은 국립공원인 계룡산[845.1m] 지괴가 분포하고...
-
요즘 농촌의 민속의례들은 과거 조사해 놓은 기록보고서나 민속에서 이야기하는 옛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민속이란 그 주어진 환경과 사회의식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의식주 및 생활환경, 가치관이 달라진 지금, 옛 의례란 정말 책에서만 찾아 볼 수 있을 뿐이요, 나이 지긋이 드신 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런 면은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공암...
-
공암리의 교육 생활권은 크게 공주 및 대전권으로 볼 수 있다. 학교로는 유일하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518-1번지에 있는 공립초등학교인 반포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공암의 이웃동네인 000에는 반포중학교가 위치하기 때문에 공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곳으로 중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근처에 없어 공주 시내나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학교로 분산하여 통학...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에 있는 봉우리. 국사봉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 다수가 존재하는 데, 보통 나랏일을 하는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나라의 스승이라는 국사봉(國師峰)과 나라에서 작호를 주었다는 국사봉(國賜峰) 등이 동음이의어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봉곡리의 국사봉은 후자에 해당한다. 해발 고도가 392m 정도인 국사봉은 정상 부근에 토르가...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바위. 굴바위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의 마을 남쪽에 있으며, 아래 부분에 굴이 뚫려져 있는 자연석 바위이다. 앞에 들판이 펼쳐져 있어 바위의 굴이 보인다. 굴은 높이 20척(606㎝), 너비 12척(364㎝), 굴의 길이가 30척(9m)이나 된다. 굴바위는 충현서원(忠賢書院)의 창건자인 고청(孤靑) 서기...
-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공암에서는 벼농사 이외에도 각종 농산물을 심고 거둔다. 각종 농산물이란 나물, 채소, 과일 등으로 마을 사람들은 내다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 집에서 소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규모로 경작하고 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동안 내내 수확할 수 있는 것들로는 상추, 파, 열무, 콩 등이 있고, 봄에는 감자, 고구마 등을 수확하며, 여름에는 보리, 가을에는 봄에 심...
-
공암1리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으로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조직은 ‘서원·연정마을회’ 이다. 원래 공암 1리의 동계는 서원과 연정에 각각 존재하였지만, 1990년대 초에 두 동계를 통합하여 ‘서원·연정마을회’ 라고 하였다가, 현재는 ‘부락총회’ 라는 이름으로 매년말에 모임을 하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회와 관련된 자료가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에 서원...
-
공암리 주민들의 대표자가 되어 마을일을 보아온 역대이장님을 공암리 마을사람들은 잊지 않는다. 바로 공암리 마을회관 2층의 한 면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공암리 이장단들은 자신들이 이장이 되었을 때 그리고 이장을 역임하고 있지 않은 때에도 마을의 중대사를 챙기고 농사와 마을의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기에 때로는 마을의 어른으...
-
공암마을 동쪽에는 높이가 20척에 너비가 12척, 깊이 30척 되는 공암굴이 있다. 공암이란 마을 이름도 ‘구멍 바위[孔岩]’라고 부르는 이 굴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굴 하나에 여러 가지 이야기와 설이 난무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 후기 분청사기를 만들기 위한 석회의 원산지로서 재료를 채취하느라 파여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굴의 모양이나 겉표면을 보면 돌을 떼어난 자국처...
-
공암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마을 주민들간의 단결력이 강하다. 대도시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다른 농촌마을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결이 잘 되고 있는것은 마을조직의 구성적 특징 때문이다. 공암1리의 조직은 동회장-이장-지도자-부녀회장-노인회장-청년회장으로 구성된다. 다른 마을과는 다르게 이장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는 동회장은 다른마을에...
-
공암 1리를 찾아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펼쳐져 있다. 특히 공주시내에서 공암으로 가는 강변도로는 금강과 함께 달릴 수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다. 공암에 가려면 자가용이 아니라면 모두 버스만을 이용해야 하는데 시내버스로는 공주시내에서는 2, 5, 21번을 타고 15분, 대전 유성에서는 5번을 타고 10분이다. 또한 대전과 공주를 오가는 직행버스도 이곳에...
-
2007년 9월 8일에는 반포면민체육대회가 있었다. 매년 이맘때쯤 반포면사무소에서는 장소를 제공하는 반포초등학교와 협의하여 체육대회의 일자를 정하여 각 마을에 통보한다. 21개 리(里)가 참여하게 되는 이 반포면민 체육대회는 3개의 행정리가 한 팀이 되어 승부를 겨루는 모임으로 면내 모든 행정마을 단위의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각 마을은 행사를 치르기 전날부터 대회 연습 또는 음식...
-
계룡산 북쪽 줄기의 고청봉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공암마을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그 중 대부분은 풍수와 밀접하게 관련지어 내려오는 것들인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마을의 터나 지리 등의 특색을 반영해 준다. 이 중 조사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을의 서북쪽 양지마을 도로가에는 아직도 300년 묵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솔고개인데,...
-
공암리에 있는 반포초등학교는 공주에 있는 초등학교 중 다섯 번째 설립된 학교요, 현재 반포면에는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로 일제치하 1921년에 세워져 올해로 85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현 구성은 1999년에 설립된 특수학급 1학급을 포함하여 7학급과 유치원 1학급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교원 14인, 일반직 1인, 기능직 4인으로 19인이 운영하고 있...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조선 말기 공주목에 속한 면으로, 원봉리(元峰里)에 있는 반계·반포의 이름을 따서 반포면이라 하였다. 백제시대에 웅천에 속하였고, 신라시대에는 웅주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관할로 덕진현의 일부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진현에 속한 지역을 연기군(燕岐郡)과 대덕군(大德郡)으로 이관하고, 공암리(孔岩里)...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국사봉 아래 골짜기에 위치하여 있어 새울 또는 봉명(鳳鳴)·봉곡(鳳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捕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봉암리(鳳岩里)·갑동(甲洞)·검천리(儉川里)가 통합되어 봉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가 되었다. 봉곡리의 서부와...
-
공암의 노인들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릴적(1900년대) 마을에서 행해졌던 놀이들을 지금도 많이 기억하고 있다.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놀던 공치기(장치기), 꼬리먹기, 지게상여, 들독(들돌)들기, 풀각시놀이, 연자씨 놀리기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놀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놀이가 행해질 지 모르나 공암에 펼쳐진 자연놀이터에서 행해지던 공암리 사람들만의 놀이였다....
-
마을의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농촌마을과는 이질적인 전원주택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양지말에 위치한 이 전원주택단지에는 양지말의 전체 29가구 중 25가구가 산을 깎아 만든 높은 부지에서 새로운 단지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단지 내의 부지는 원래 21,157㎡(약 6,400평) 규모의 복숭아밭이었으나, 후에 복숭아밭 주인이 그 자리에 축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다가 실패하게 된 이후...
-
과거 공암리의 경제 생활권은 1950년대 공암장이 섰던 때를 제외하면 마을과 인접한 공주장이나 유성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공암장이 섰던 곳은 현재 보건소가 있는 자리로, 4일장과 9일장이 열렸다. 이후 공주·유성의 상설 시장과 대형 마트가 생기고, 1997년 마티터널이 완공되어 개통됨에 따라 공주와 대전으로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서 생활소비권이 빠른 속도로 확대 되었다. 현재의...
-
현재 마을을 이끌고 있는 이장님은 서만호씨다. 공암리에 고청 서기가 터를 잡으면서부터 마을에는 이천서씨가 많이 살게 되었고, 현재 그들은 공암마을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보다 1982년에 한 마을에서 갈려 나간 공암 2리에는 더 많은 약 80%의 가구가 이천서씨 일 만큼 공암리에는 이천서씨가 많이 산다. 이 두 마을의 역대 이장 명단을 조사해 본 결과 90%가...
-
공암 입구에서 서원마을로 약 50미터 들어가면 마을의 산 증인 서인호 씨 댁이 나온다. 서인호(남, 82세) 씨는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첫 행정사무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을의 대표자로 지금까지 마을과 함께 하고 있다. 서인호 씨 댁의 대문은 현재 검은 철 대문으로, 대문 바로 밖에는 서인호 씨의 유일한 농토가 자리한다. 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해 있다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편입된 법정리. 성강산성(聖岡山城) 아래에 위치해 있다 하여 성강(聖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남산리(南山里)·성산(城山)·화암리(花岩里)가 통합되어 성강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성강리가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산봉(雨傘峰) 아래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소호골 또는 송곡(松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송곡리라 하였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가 되었다. 송곡리의 동부·남부와 서부에는 각각 해발 고도 500여m와 200여m의 산지가 형성...
-
공암1리에 탑할머니를 제외하고 또 하나의 신앙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마을의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선돌이다. 돌은 남쪽에 1기, 북쪽에 2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 선돌들은 언제부터 세워졌는지 그 건립시기를 알 수 없고, 특별히 부르는 이름도 없다. 공암리에서는 이 돌을 ‘수구(水口)막이’로 인식하고 있다. 수구막이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로운 기운을 옮기는 물(水)이...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원전(元田)이라 불렀고, 땅에서 뜨거운 물이 나와 원천(源泉) 또는 온천(溫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박정자(朴亭子)·사봉리(沙峯里)가 통합되어 온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가 되었다. 온천리의 동부와 남부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을 뜻한다. 공주 지역에도 이와 같은 요지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기와 등을 다량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은 구운 벽돌을 이용해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서 발원하여 연기군 금남면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1991년 5월 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연장 20.90㎞, 유로 연장 21.35㎞, 유역 면적 95.29㎢이다. 기점의 계획상의 홍수량·홍수위·하폭은 각각 170㎥/s·235.89EL.m·10m이고, 종점의 계획상의 홍수량·...
-
공암리 사람들은 예로부터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벼농사가 주업이라도 다른 지역은 왠만하면 고추나 포도 등 과실업 또는 특용채소를 상품작물로 삼아 재배하여 부수익을 얻고 있는 실정인데 공암은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상품작물을 경작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이런 것에 의문을 갖고 연정말에 사는 김응천씨는 토마토를 재배하기 위해 하우스를 짓고 몇 년째 시도하고 있지만 풍년...
-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큰 마을의 보물이자 자랑거리는 마을회관이다. 마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회관은 205㎡(약 62평) 규모의 대지에 2층 양옥건물로서 외관부터 근사하다. 현재 마을회관의 부지는 공암리 주민이었던 임희수씨가 마을을 위하여 기증한 것으로, 공주시에서 지원된 금액 8천만원과 이장님이 기증한 7천 5백만원으로 2000년 2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2...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송선생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백실에서 탑에 제를 올리어 금강의 수해를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이곡리는 1983년에 이인면에 편입되었다. 이곡리의 원래 순수 우리말 이름은 배실이다. 1914년 일본의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배실이 이곡리(梨谷里)로 번안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주 지역은 여러...
-
기계와 영농기술이 부족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과거 농촌마을에서는 각 마을별 또는 이웃마을과 협력하여 두레라는 조직을 만들어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힘을 합쳐 농사를 지었다. 이곳 공암리도 두레조직이 있었고 최근까지도 제법 운영이 되었다고 한다. 공암리에서는 두레가 조직되는 시기는 모내기를 마친 후 첫 김매기가 시작될 무렵인 음력 6월경이었다. 성인 남자들이 정자나무 아...
-
공암마을의 축제로는 또하나 정월대보름의 척사대회가 이다. 이것은 전에 내려오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몇 안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공암리에서는 과거에 복조리걸기, 신수점, 집안 뱅이하기, 걸립, 탑제, 싸리나무 불때기, 화재막이, 잡귀 풀어먹이기, 쌈밥먹기, 두부먹기, 개밥 일찍 안주기, 소여물주기, 소점보기, 잠안자기, 대보름 척사대회, 달점보기, 삼...
-
공암1리는 이천서씨 집성촌이다. 공암리는 크게 1리와 2리로 나뉘어 있는데 이 중 입향조 고청 서기[1523-1591]가 처음 들어와 정착한 곳은 공암 1리이다. 그러나 대를 거듭할수록 정착민의 수가 늘어나면서 북쪽으로 조금 더 깊숙한 산 아래 분지에 공암 2리가 형성되었고 좀 더 큰 도로가에 인접한 공암 1리에는 타성의 성씨들이 좀 더 많이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니 두...
-
공암리의 주업도 농업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농업의 경영 형태가 인력 위주였다. 소를 이용한 논·밭갈이와 손으로 하는 모내기에 낫으로 농작물을 수확하고 지게를 운반 수단으로 삼았으며 벼를 탈곡할 때에는 홀태(보리, 밀, 조, 벼 등을 홅을 때 사용하는 기구) 또는 탈곡기를 이용한 노동집약적 농사 형태였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농촌 입구에...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 조선 전기까지는 하나의 자연촌(自然村)이 하나의 리(里)를 형성할 만큼 자연적 최소 생활공간이 규모화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인구의 증가, 경지의 개간과 확대, 농법의 개량과 생산량 증대 등으로 점차 생활 공간이 규모화하고, 이러한 변화는 자연촌의 성장과 발달, 나아가 집촌(集村)으로의 성장과 발달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충현서원의 유적. 1581년(선조 14) 학자 서기(徐起)[1523~1591]가 주자(朱子)를 추모하기 위해 ‘박약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서원을 세웠다. 이후 이존오(李存吾)·성제원(成悌元)·이목(李穆)의 위패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복원하고, 1624년(인조 2) 조헌(趙憲)을 추가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