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세거한 이유태의 문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가 작고한 후, 손자인 이단성(李端誠)이 가장(家藏) 시문을 수습하고 연보를 편찬하던 중 세상을 떠나자, 그 후 5세손(이름 미상)이 임성주(任聖周)[1711~1788]와 김지행(金砥行)[1716~1774]의 교정을 거쳐 17책으로 산정하였다. 이후 다시 김정묵(金正默)[1739~179...
-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태봉산에 있는 조선 중기 숙종대왕의 태실비 2기. 1661년 숙종이 태어났을 때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을 찾은 끝에 현 위치에 태를 묻고, 훗날 왕위에 즉위하자 왕의 태실로 승격하여 새롭게 조성하였다. 그 과정을 기록한 2기의 태실비가 1661년(현종 2)과 1683년(숙종 9)에 각각 건립되었다. 그 후 고종 때에 숙종의 태는 경기도 양주로 이장되었...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이유태가 여생을 보낸 장소. 공주이유태유허지는 초려 이유태(李惟泰)가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이유태는 현종·숙종 대의 문인으로 특히 현종 때 학덕이 높은 유학자로 크게 활약하였다. 1675년(숙종 1) 복상 문제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승길(金承吉)이다. 숙종(肅宗)·경종(景宗)·선의왕후(宣懿王后)[경종의 계비]의 국상에 산에 올라 호곡(號哭)하기를 3년간 계속하였다. 국기일(國忌日)이면 목욕재계하고 소식(小食)하는 것을 평생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에 있으며, 묘비는 너비 41㎝, 높이 9...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숙종 때 이 마을 출신인 한씨(韓氏) 한 사람이 크게 출세하여 시랑(侍郞) 벼슬을 하였다 하여 한시랑(韓侍郞) 또는 대시랑(大侍郞)이라 불렀으며, 또한 난리 시절에도 마을이 평온하였으므로 중리(中里)라고도 하였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대시랑리와 중리에서 ‘대(大)’자와 ‘중(中)’자를 따 ‘대중(大中)’이 되었다. 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
조선 중기 공주 지역의 정치와 사상의 흐름을 주도한 양반 지식인 세력. 공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호서 지방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비중이 더욱 심원하다. 공주 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낸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 이후로는 유서 깊은 유향으로서 청주, 충주 등과 더불어 호서 사림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계룡산과 금강을 배경으로 천험의 지형...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이다.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 때 서적 편수처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에서 유래하였고 제도로 정해진 것은 송(宋)나라에 들어와서이다. 특히 주자가 도학연마의 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1680년(숙종 6) 사헌부지평·홍문관부수찬, 1683년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1687년 승지가 되었다. 1694년 개성부유...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이(德而), 호는 수촌(水邨)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정원(吳挺垣)이다. 1656년(효종 7)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한 뒤 가주서(假注書)가 되었고, 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문학·사헌부지평·교리·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사복시정(司僕寺正)·평안도암행어사를 지냈으며, 사헌부집의·응교·의정부사인을 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오시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탈되었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관작이 1784년(정조 8...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우성면의 반촌리·동곡리·목동리·귀산리·내산리에서는 만경노씨, 상서리·방문리에서는 함평오씨, 방흥리·신웅리에서는 보성오씨, 옥성리·대성리·봉현리에서는 김해김씨, 보흥리·옥성리에서는 단양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1. 만경노씨 『만경노씨족보』에 의하면 만경노씨의 시조는 고려시...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은 조선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이고,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시(權諰)의 딸이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成渾)의 외손이므로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다. 효종(孝宗) 말...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고수하고, 학문의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며, 시대 변천에 역행하여 당면 과제를 외면하는 당시의 노론 정객과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윤증의 사상은 소론 진보 세력...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세거한 이유태의 유고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조선 현종 때의 학자로서, 사계 김장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예학에 이름이 높았다. 학문으로 이름이 높아 인조 때 세자의 사부를 지냈고, 이조참의, 승지, 대사헌 등을 지내는 동안 국정을 운영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1675년(숙종 1) 제2차 예송논쟁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에 있는 산. 공주시의 태봉산은 숙종의 태를 묻었다고 하여 태봉산이라 하였다. 태봉산은 공주시가지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고립 구릉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주로 운모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쪽과 남쪽의 말단부는 혼성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에 따라 석회규산암, 규암, 흑연편마암을 협재하고 있다. 태봉산 정상을 중심...
-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에 의하면 땅속에는 살아 꿈틀대는 정기(精氣)가 있으며, 이것은 우리 몸속의 피처럼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정기를 타고난 사람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정기가 뭉친 곳에 집을 지으면 가운이 뻗쳐서 대대로 번창하며, 조상의 무덤을 쓰면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집 터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