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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944
한자 鐵器時代
영어음역 Cheolgi Sidae
영어의미역 Iron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이주림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철을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시작은 중국 연나라로부터 철기를 도입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경우 석기와 더불어 청동기 중심의 유물에서 철기 유물이 유입되는 단계로, 검의 경우 철검과 칼 손잡이의 동제품의 결합으로 이어졌다.

기원전 2세기경 제출(製出)[만들어 냄] 기술이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주조(鑄造), 단조(鍛造) 철기처럼 자체적인 철기 제작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철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단계이지만, 여전히 도구에서는 청동기나 민무늬 토기가 사용되며, 묘제에서는 널무덤[木棺墓]와 독무덤[甕棺墓]가 주를 이루고 있던 시기이다. 그 연대는 기원전 2세기 내지 1세기 초반에서 전반까지로 설정된다.

1세기경 즈음부터 한반도 남쪽 지역에서 철 제작 기술이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철기가 보급·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철기 문화로 완전히 접어든 단계로, 묘제에서 널무덤[木棺墓]가 등장하고, 철기 중 검·칼·창·갑주 등 무기류가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

철기 생산의 본격화, 현지화, 제조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문명의 발전뿐 아니라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새로운 사회 형태로서의 국가 탄생, 묘제의 변천 등 다방면에서 큰 영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철기 생산은 농기구, 공구, 전쟁 도구의 생산 및 다양화를 가져와 생산력의 증대 및 전쟁 수행 방식의 혁신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국가의 성립 및 확산을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이미 북쪽에서는 고조선, 위만조선, 부여, 옥저, 동예 등이, 남쪽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과 같은 국가들이 자리 잡았던 시기이다.

[철기시대 유적]

현재 김천 지역에서 철기시대 유적이 발굴된 곳으로는 모암동 주거지 유적이 있다. 김천시 모암동 경부고속철도 건설 사업 구간 8-2공구 일대 1만 5000여㎡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이곳에서 고대 주거 건축 기법의 양상과 주거 유적의 입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삼한~초기 삼국 시대[3~4세기] 주거지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처음으로 대량 발굴된 것이다. 삼한 시대의 주거지 33기와 구덩[竪穴] 9기 등 42기, 삼국 시대의 석실과 돌로 만든 곽[石槨] 등 18기, 고려 시대의 석곽 등 12기, 조선 시대의 널무덤[土壙墓] 59기 등 모두 131기가 발굴되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삼국 시대[6세기 중후반] 석실분 5기는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당시 수장층(首長層)의 묘제(墓制)와 유물상(遺物相)을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이들 주거지 안팎에서 철기류와 옥석 등 삼한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유물(遺物) 388점도 발굴되었다. 그 밖에 김천시 감문면개령면 일대에는 고인돌과 토광묘, 석곽묘 등 크고 작은 고분이 산재해 있으며, 이 고분들은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철기시대의 국가들]

김천 지역의 대표적인 고대 국가로는 감문국(甘文國), 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 주조마국(走漕馬國) 등이 있다. 감문국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걸쳐 감천 유역에 산발적으로 집거하던 토착민 집단들이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전환기 무렵 상대적으로 유리한 생산 기반을 가진 감천 중하류의 개령, 감문 일대를 중심으로 통합 형성된 김천 지방의 대표적 읍락 국가이다.

변한 12소국 중의 하나로 김천시 조마면 일대에 있었던 소국인 주조마국은 가야 연맹의 일원으로서 토착적인 세력 기반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개별적인 정치 집단으로 성장을 지속하다가, 562년 다른 가야 소국들과 함께 신라에 병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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