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718
한자 李鳳周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장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이봉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이봉주 납청 방짜유기 공장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이봉주 구로동 평부양대유기 공장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이봉주 안양시 박달동 이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이봉주 안양 방짜유기 기능보유자 선정
출생지 이봉주 출생지 -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성격 무형문화재
성별
대표 경력 유기장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한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개설]

이봉주(李鳳周)[1926~ ]는 1994년 현재 동작구 신대방동에 거주하고 있다.

[활동 사항]

이봉주는 1926년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아연광산에 취직해 직원 숙소에서 불때는 일을 맡았다. 이북에서 결혼까지 해서 딸까지 얻었지만, 아버지와 딸을 잃고 1948년 월남하게 되었다. 이봉주의 아내는 이북에 남았고 2008년까지 고아를 돌보다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봉주는 1948년 용산 후암동에서 납청 방짜유기 공장을 하던 탁창여[아내의 이모부]의 양대공장에 입사하여 기능을 익혔다. 1957년 구로동에 평부양대유기공장을 설립하였다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1950년대 연탄을 사용함에 따라 유기가 쉽게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유기일을 하지 않다가, 1960년대 말 다시 공방을 시작했으며 당시에는 그릇대신에 징이나 꽹과리와 같은 악기를 주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1978년에 안양시 박달동으로 이주하였다. 1994년에는 안산 시화공단으로 확장 이전하여 방짜유기[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놋쇠에 열을 가하여 녹여 망치로 두들기고 찬물에 담금질하여 유기를 제작하는 방법]를 확대 제작하였다. 방짜유기 제작은 일찍이 평안북도 정주군 마산면 납청 마을에서 발달하여 이곳에서 만들어진 유기를 ‘납청 양대유기(良大鍮器)’라 하며, 이곳의 유기장들이 6·25전쟁 때 월남하여 경기 안양시에서 생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6월 유기장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안양 방짜유기[납청유기]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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