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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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일대가 표기된 대한제국기에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국지도. 「대한여지도」는 대한제국기에 전국 지도로 제작한 지도이다. 대한제국의 학부편집국에서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여지도」는 제작 연대는 정확하지 않고 작자도 알 수 없다. 다만, 대한제국기 학부편집국에서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학부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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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일제가 경기도 시흥군·과천군·안산군을 시흥군으로 통합한 행정구역 개편 과정.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을 병합한 이후 3·1운동이 일어나기까지, 헌병경찰제도라는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식민지 지배체제를 굳히기 위한 기초 작업을 완성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한 목적도 여기에 있었다. 일제는 병합 직후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실시하면서, 이를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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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유지된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포함한 지방행정구역. 1895년에 과천현에서 승격된 과천군이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시흥군·안산군과 합군되어 시흥군으로 개편되자, 현재의 동작구[노량진·본동·흑석·동작동] 지역은 시흥군 북면으로, 관문리 등 6개 리는 시흥군 과천면으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에 읍호(邑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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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하북면과 더불어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에 존재했던 면. 과천군이 존속했던 1895년부터 1914년까지 과천군 예하에 있던 면이다. 1413년(태종 13) 대대적인 읍호(邑號) 개정으로 과주(果州)가 과천(果川)으로 바뀌면서 과천군의 전신인 과천현이 등장하였다. 과천현은 1414년 금천현(衿川縣)과 병합되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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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과천군 상북면과 더불어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있었던 면. 과천군이 존속했던 1895년부터 1914년까지 과천군 예하에 있던 면이다. 1413년(태종 13) 대대적인 읍호(邑號) 개정으로 과주(果州)가 과천(果川)으로 바뀌면서 과천군의 전신인 과천현이 등장하였다. 과천현은 1414년 금천현(衿川縣)과 병합되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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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개항기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역사.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근대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경인선 개발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도시정책[시구개수안, 경성시가지계획안]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을 통해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교통이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이 근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교통이 발전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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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를 포함한 옛 금천 지역을 관향으로 하는 여섯 토착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조선 전기 경기도 금천현(衿川縣)의 토착 성씨로 이(李)·조(趙)·강(姜)·장(莊)·피(皮)·계(桂)의 6성이 있었다. 금천의 토착 성씨 중 가장 대표적인 성씨는 금천 강씨로 강감찬(姜邯贊)의 5대조 강여청(姜餘淸)이 신라 말 경주에서 금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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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량진동(鷺梁津洞)은 조선 시대에 용산구 이촌동에서 수원·인천 방면으로 가기 위한 노들나루가 위치했던 곳이었다. 또한 도성 방어를 위해 군사를 주둔시킨 노량진을 설치하여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 1914년 시흥군에 편입될 때 마을 이름을 노량진리라고 정하여 지금에 이른다. ‘노량진’은 한강의 나루터인 노들나루를 한자로 옮긴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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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남부에 있는 자치구. 동작구는 한강 이남 지역 중 서울에 가장 일찍 편입된 지역 중 한 곳이다. 동작구가 서울에 편입되었던 1936년에는 경성부 영등포출장소 소속이었으며 이후 관악구 관할 시기를 거쳐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서울의 17번째 구로 개설되어 현재에 이른다. 동작구의 수리적 위치는 북위 37°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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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한강 남안에 설치되었던 나루. 동작도는 한강 이남 ‘동재기 나루’ 혹은 ‘동작 나루’를 일컫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동작진(銅雀津)의 명칭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루는 여행자의 나들목이자, 교역장이며, 국가 명령의 통신기관이었고, 군사적 기능을 겸하였다. 또 조세수취 조운(漕運)의 근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에서는 진도(津渡)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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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88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존속하였던 경기도의 지방행정구역 1914년에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동작구·영등포구·구로구·관악구의 일부와 경기도 안양시와 광명시의 일부를 관할구역으로 두었다가, 1989년 1월 1일 의왕시·군포시·시흥시로 분할·해체되었다. 조선 시대 1795년(정조 19) 현 서울특별시 금천구(衿川區)에 해당하는 금천현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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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63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존속하였던 경기도 시흥군 내의 행정구역. 경기도 시흥군이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안산군·과천군과 합군하여 9개 면의 시흥군으로 통합될 때 종전의 군내면을 흡수하였으며, 8·15해방 후 1949년과 1963년 서울특별시가 행정구역을 대거 확대하면서 관할 구역 내의 모든 리가 서울로 편입됨에 따라 해체되었다. 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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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36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존속하였던 경기도 시흥군 내의 행정구역. 구한말의 경기도 시흥군이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안산군·과천군과 합군하여 9개 면의 시흥군으로 통합될 때, 시흥군 상북면·하북면과 과천군의 상북면·하북면에 속한 리들을 통폐합하여 11개 리로 정리되었다가, 1936년 경성부와 동면에 흡수됨으로써 폐지되었다. 일제는 19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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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부터 1963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존속하였던 경기도 시흥군 내의 행정구역명. 구한말의 경기도 시흥군이 일제 식민지시기 1914년 안산군·과천군과 합군하여 9개 면의 시흥군으로 통합될 때,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과 동면에 속하였던 지역들이 시흥군 신동면으로 통폐합되어 8개 리로 정리되었다가,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됨으로써 폐지되었다. 일제는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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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 대림삼거리에서 금천구 시흥동 시계에 이르는 도로. 시흥대로(始興大路)는 금천구 시흥동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시흥대로에 속하는 구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시흥군에 속했다. 시흥대로는 길이가 6.8㎞, 폭이 50m인 왕복 10차선 도로이다. 시흥대로는 구로구·금천구·영등포구의 공단지역을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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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부터 1895년까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설치된 조선 후기의 지방행정구역. 시흥현은 1795년에 기존의 금천현(衿川縣)을 고친 고을 이름으로, 1895년에 시흥군(始興郡)으로 승격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1795년(정조 19)은 정조의 부친 장헌세자와 모친 혜경궁 홍씨가 회갑인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조는 같은 해 윤 2월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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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개략적 역사. 인류가 처음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는 어로 및 채집의 필요성 때문에 큰 물가나 바닷가에 주거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 역시 한강이라는 큰 물을 옆에 두고 있어 인류의 초기 정착지 형성에 유리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에 들어서 이 지역은 마한의 세력권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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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의 지리적, 사회적 특성 등으로 예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자연마을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을 의미하며,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던 자연마을은 대략 37개 정도가 확인된다. 동작구는 한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은 생활공간이 되었으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자연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는 자연마을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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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1910년대에 현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을 포함한 식민지 조선의 토지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실시한 사업.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근대적 토지제도·지세제도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토지소유권·토지가격·지형지모 등을 조사함으로써 토지정책을 구축하고 식민지지배의 물적 토대를 확보하기 위하여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토지소유관계를 근대법에 근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