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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29
한자 李仁實
이칭/별칭 문정(文貞),자허(子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081년연표보기 - 이인실 생
활동 시기/일시 1106년 4월 - 이인실 병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153년 10월 26일연표보기 - 이인실 졸
출생지 이인실 출생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견주(見州)
대표 관직 문하평장사

[정의]

고려 전기 도봉구 지역에 설치되었던 견주(見州)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견주(見州). 자는 자허(子虛). 묘지명에 의하면 이인실(李仁實)[1081~1153]은 고려 삼한 공신(三韓功臣) 이흠률(李歆律)의 6세손으로, 어머니는 신라왕의 후손인 대부인(大夫人) 김씨(金氏)이다. 특이한 점은 묘지명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은 실려 있지 않은 채 “관직과 이름이 높았으나 50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였다.”라고만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인실은 73세에 사망하였고, 배우자나 후손에 대한 내용이 없는 점도 특징이다. 고려 시대에는 종종 독신으로 일생을 마치는 남녀가 있어 혹 이인실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묘지명 말미에 “어찌 이분을 군자라고 하지 않겠는가. 공의 자손으로 반드시 현달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구절로 미루어 기록이 미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이인실은 9세에 글을 지었고, 20세도 되기 전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으며, 26세 때인 1106년(예종 1)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나주 서기, 통의부 녹사를 거쳐 예종이 국자감에 7재(七齋)를 설치하자 학유(學諭)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국자박사 겸 직사관으로 승진하여 『춘추(春秋)』를 강의하였다. 계속하여 교주 수령, 우정언 지제고,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좌정언, 좌우 사간, 중서사인 간의대부, 어사잡단 지대사, 어사대부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136년(인종 14)에는 예부시랑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왔으며, 이 해 묘청(妙淸)의 난에 어사잡단으로서 김부식(金富軾)과 함께 종군하였다. 1145년(인종 23) 8월 동지추밀원사 태자빈객, 1148년(의종 2) 중서시랑평장사 판이부사, 1149년(의종 3) 4월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치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육경(六經)과 여러 사서(史書)를 배워서 통달하였는데, 특히 『춘추』에 뛰어났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이인실이 세상을 떠나자 의종이 공부 낭중 유록공(庾祿公)을 보내 조문하고,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노부(鹵部)를 갖추어 장례를 마치게 하고, 사흘 동안 조회를 멈추었다. 또 이인실에게 특진 검교태사 수사도 문하시랑동중서 문하평장사 판이부사 감수국사 주국(特進檢校太師守司徒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部事監修國史柱國)을 추증하고, 문정(文貞) 시호를 내려주었다. 한편 이인실이 1141년(인종 19)과 1146년(인종 24) 지공거를 역임한 전력이 있어 그의 은혜를 입은 많은 선비가 장례를 돕고 슬퍼하였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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