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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소재했던 면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1919년 3월 10일에 일으킨 독립만세운동. 1919년 고종의 인산에 참례한 원용은(元容殷)은 귀향한 후, 면천 공립 보통학교[현 면천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0일, 4개 학년 90여 명을 인솔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주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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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일(金道一)[1886~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김도일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규모,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김도일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번지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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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1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주권 회복과 민족 생존권 확보를 위해 항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내재적 역량이 결집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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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에 조성된 근대 개항기 항일 의병총. 한말 의병 항쟁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는 조선 시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寄着地)로 식량을 탈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의병들은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삼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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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개된 화서학파의 민족 운동. 화서학파(華西學派)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을 지칭한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당진 지역 민족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배경으로 화서학파와 연결된 성리학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표되는 한말의 성리학은 외세 침략에 적극적으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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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 도중삼(都仲三)[1878~1907]은 1907년 10월 항일 의병에 투신하여 항쟁하다가 1907년 1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충청남도 면천군 승선면 가재동[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서 태어난 도중삼은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에 투신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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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당진의 독립운동은 대한 제국의 국권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상실되어 가던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내내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당진 사람들의 항일 투쟁을 지칭한다. 당진 사람들은 을사늑약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권이 피탈됨을 국권 상실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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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서 봉기한 구한말 항일 의병. 대한 제국 시기 충청남도 면천군에서 일제 침략에 항쟁하는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들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피탈된 데 항의하여 거병하였다. 또한 1907년 대한 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더욱 치열하게 항쟁하였다. 대표적인 면천 의병장으로는 최구현(崔九鉉)·이만식(李晩植)·도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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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 묘소가 있는 근대 개항기 항일 의병장. 성재한(成載翰)[1860~1906]은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을사늑약 강제 체결에 항쟁하여 일어난 홍주성 의병 항쟁에서 활약하였다. 성재한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운거(雲擧)이다. 성재평(成載平)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성재한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원당리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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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를 근거지로 1906년에서 1908년 사이에 활동한 항일 의병. 의병 항쟁은 1895년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공포로 시작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다시 재연되었다. 그리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의병 전쟁으로 격화되었다.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소난지도는 당진 지역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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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봉운(宋逢云)[1891~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송봉운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아버지는 송일기,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송봉운은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사성리 20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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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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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달준(李達俊)[1881~1919]은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이달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명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달준은 지금의 충청남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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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8월 29일 대한 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아 식민지화하고, 민족 말살 정책 및 식민지 수탈 정책을 추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한 외진 고을이었다. 철도와 도로 확충이 미흡하여 육상 교통이 불편하였고 각종 정보 교류와 물자 보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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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항일의병장. 정주원(鄭周源)[1870~1925]은 1907년 군대 해산 후 일제 침략에 항쟁한 항일 의병장이다. 충청도와 경기도를 통합하는 13진도 총대장에 올랐고, 수백 명에 달하는 의병을 지휘하였다. 정주원은 치열한 항쟁 중이던 1908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복역 후 송악면 가학리에서 살다가 1925년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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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장. 최구현(崔九鉉)[1866~1906]은 1887년 무과에 급제하고 군부 참서관을 역임하던 중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그는 당진시 송악면 기지시리에 창의도소를 설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의병을 이끌고 면천읍성을 공격하였고, 석문면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활발한 항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화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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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1910년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발발하거나 활동한 항일 의병. 한말 항일 의병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에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한 민족 운동을 말한다. 갑오년[1894]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에서 비롯된 항일 의병은 을미년[1895]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실시를 계기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의병은 양반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