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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동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1167
한자 食生活[東區]
영어공식명칭 Dietary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경희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식품 획득·운반·저장·조리 등에 할애해 왔으므로 각 민족은 그들 나름의 식생활문화를 영위해 왔다. 우리나라는 4,000여 년에 걸쳐 농경을 주업으로 삼아 살아왔다. 농업의 시작이 바로 한국 식생활문화의 여명기이며, 농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우리의 식생활을 살펴보면 여름에는 열대산 쌀을, 겨울에는 한대산 보리를, 그리고 잡곡도 간간이 활용하여 이모작의 체계로 최대식량을 조달했다. 이로 인하여 곡류를 주식으로 하고 상용저장식품으로 장·김치·식초·술 등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고급 발효식품을 개발하였다. 그 외의 계절식품으로는 각종 찬류를 발전시켜 영양상으로나 미각상으로 손색이 없는 음식문화를 형성했다.

[1950년대~1960년대]

1950년대 이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의 식량 사정은 궁핍했다. 일제의 수탈과 착취, 한국전쟁의 혼란으로 인해 하루 한 끼를 마련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식량이 부족해지는 5~6월의 보릿고개를 넘기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 시절 농민들은 벼보다 밀이나 보리를 주로 재배했다. 보리밥이나 수제비, 칼국수가 주식이었다. 곡물은 죽을 쑤어 되도록 양을 늘려 많은 식구들이 먹도록 했다. 보리농사를 많이 짓던 시절에는 시금장을 많이 해 먹었다. 시금장은 보리를 빻아 가루를 만들어 반죽하고 뭉쳐서 모양을 내고, 그것을 불에 구운 다음 걸어 말린다. 그것을 메주처럼 띄운 다음 절구에 빻아 가루를 만든다. 이 가루에 메줏물을 붓고 저어서 잘 혼합시킨다. 여기에 여러 가지 채소 및 무말랭이 등을 넣어 따끈한 아랫목에서 발효시키면 시큼한 맛의 시금장이 만들어진다.

1950년대~1960년대의 부식 재료는 자투리 텃밭에서 키운 무·고추·배추·호박 등의 채소가 전부였다. 또 산에서 캐온 나물이나 칡뿌리, 소나무 껍질인 송기 등으로 죽을 쑤고, 떡을 하는 등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을거리로 만들어 먹었다. 김치는 지금처럼 소금이나 고춧가루, 젓갈 같은 양념을 충분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빛깔도 허옇고 맛도 밍밍했다. 그 외에 무를 말려 두었다가 무말랭이를 해 먹고 텃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추나 상추 등이 찬으로 나왔다.

대구광역시 동구 출생이자 공산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문보근이 1950년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를 적은 『우리고장』을 보면, 동구 지역 농업의 특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동구는 고산지대이고 분지이며 수원이 풍부한 까닭으로 주민들은 주로 농산물과 임산물을 수입으로 생계를 삼았다. 농산물 중 주로 생산된 작물을 보면, 맵쌀[12,399석], 보리[1,150석], 콩[474석], 밀[180석], 쌀보리[111석], 팥[100석], 찹쌀[77석], 모밀[27석], 기타[23석], 옥수수[13석], 녹두[11석], 조[10석], 수수[7석], 극마[9,000관], 감자[2,500관]이다. 밭농사와 벼농사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다. 따라서 1950년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사람들은 주로 농작물에 의존하여 식생활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이후]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의 식생활에 변화가 온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정부의 경지정리사업과 쌀 종자개량사업으로 식량생산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정부미’라 불렸던 통일벼로 지은 밥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통일벼는 밥맛이 없고 근기가 없었던 탓에 주민들로부터 점차 외면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주민들의 주식은 정부미에서 일반미로 바뀌게 된다. 또한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은 달걀이나 우유 같은 단백질 식품도 섭취할 수 있게 되고, 생선이나 육류의 소비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쌀이 넉넉해지면서 굳이 보리를 밥에 섞어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주민들은 보리 대신에 콩이나 현미, 흑미 같이 건강에 좋은 곡물을 밥과 함께 섞어 잡곡밥을 해 먹었다.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은 혼례나 회갑 잔치 등의 특별한 일이 있으면 술을 담그고, 여러 가지 떡을 해 먹었다. 잔치 때는 9~10가지의 떡을 만들어 내놓았다. 주로 만들어 먹었던 떡으로는 단지·봄편·재기떡·송기떡·송편 등이 있다. 단지는 찹쌀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해 치대고 쪄낸 후 작은 모양의 찰떡을 만들어 여러 가지 고물을 묻혀낸 것이다. 노란콩·완두콩·팥 등을 삶은 뒤 빻아 가루를 만들어 고물로 사용했다. 봄편은 시루떡과 같은 종류이다. 재기떡은 자줏빛이 도는 색이 고운 떡이다. 이것은 산에서 나는 주취라는 식물의 뿌리를 들기름에 볶아 재료로 이용한 떡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은 팔공산이라는 천혜의 자연 요소와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와 같은 명승 고찰들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부터 전국에서 즐겨 찾는 명승지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피서지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대구 사람들은 팔공산 계곡 골짜기 골짜기에 모여들어 피서를 즐겼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피서지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난전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주로 닭을 요리한 백숙을 많이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의 김장 풍속은 2000년대 이후 많이 달라졌다. 우선 김장을 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마당 한구석에 땅을 파고 독을 묻어 김장 김치를 보관하던 시절에는 양력으로 12월 초순경 적당히 추워졌을 때 김장을 해야 겨울에서 봄까지 적당히 익은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같은 전자 제품이 보급되면서, 굳이 추울 때 김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이나 찌개의 경우에도 식재료가 상당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시래기나 나물 등의 식재료만 가지고 국이나 찌개를 끓였다. 지금은 생선이나 육류 등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은 소고깃국이나 추어탕도 자주 끓여 먹고 있다. 소고깃국은 고기를 고춧가루와 마늘 등과 함께 볶다가 물을 붓고 거기에 파·토란·시래기 등을 넣어 끓여낸다.

[동구를 대표하는 맛]

대구광역시 동구의 대표 맛 소개로 대구시청 홈페이지 문화관광편에 대구 10미(味)동구청 홈페이지 문화관광편에 대구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대구 10미 가운데 동구 지역에서는 ‘뭉티기’ 식당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대경로 1번지의 안심농장직영식육식당, ‘복어불고기’ 식당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남로 166[신암동 345-8]의 해금강, ‘누른국수’ 식당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송라로 157-1[신암동 484-7]의 신암태양칼국수, 대구광역시 동구 송라로 93[신천동 501-1]의 고향집칼국수가 소개되어 있다. 대구 맛집 가운데 동구 지역을 대표하는 식당 밀집지역으로 동촌유원지 먹거리촌,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갓바위 먹거리촌, 동화사 먹거리촌, 파계사 먹거리촌, 서촌 먹거리촌을 소개하고 있다.

[동구 지역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대표적 장소, 시장]

식생활에 가장 필요한 전제조건은 원활한 식재료 공급이다. 오늘날처럼, 슈퍼마켓 등과 같은 상설 상점이 없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 동구 주민들은 각 지역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시장에서 식재료를 공급받았다. 1950년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를 적은 『우리고장』을 보면, 동구 지역 상공업의 특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상점은 고기와 일용 잡화를 파는 집이 몇 집만 있었다. 시장은 매달 3일과 8일, 6회에 걸쳐 시장이 열렸다. 당시 팔공산 인근에 형성된 대표적 시장은 백안장이었다. 시장 형성에 가장 큰 요인은 교통이다. 당시 백안장에서 매매된 품목을 보면, 농산물이 7만 2,000원, 수산물이 72만원, 직물 7만 2,000원, 가축 23만 8,000원, 기타 1만원이다. 농산물로는 맵쌀, 보리, 콩, 밀, 쌀보리, 팥, 찹쌀, 모밀, 옥수수, 녹두, 조, 수수, 극마, 감자 등이 거래되었다. 채소 및 과일로는 무, 배추, 사과, 배, 감이 거래되었다. 특용작물로는 목화, 삼, 딱, 왕굴, 들깨, 참깨가 유통되었다. 축산물로는 소, 말, 돼지, 벌통, 꿀, 밀초, 닭, 달걀이 거래되었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도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처럼,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장시’ 형태의 시장이 아닌 상설 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불로전통시장, 방촌시장, 평화시장 등이다. 2017년 현재 동구 지역에 남아 있는 시장은 효목시장, 효신시장, 동대구역전시장, 큰고개종합시장, 성동시장, 신암시장, 평화시장, 목련시장, 공항시장, 불로전통시장, 송라시장, 동서시장, 현대시장, 반야월종합시장, 방촌시장, 동구시장 등이다. 주로 교통의 요충지, 대규모 아파트 단지, 대규모 공공시설 주변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한편, 불로전통시장은 도심 5일장이 열려, 도심지역에서 새로운 장시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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