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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보한글연구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91
한자 大邱高普-硏究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9년 10월 6일연표보기 - 대구고보한글연구회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29년 12월 20일연표보기 - 대구고보한글연구회 해산
최초 설립지 대구고보한글연구회 -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 지도보기
성격 연구 단체
설립자 이종하|한순|강인만|김임달|김재철|김영|오용한|김병규|최재영

[정의]

1929년 10월 대구광역시에서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한글 연구를 위하여 결성한 단체.

[개설]

대구고보한글연구회의 구성원들은 박종홍(朴鍾鴻) 교사를 통하여 정규 수업시간에 조선어를 배우는 것이 우리글을 이해하는 데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한글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중점으로 배웠고 조선어 교육은 조선어 및 한문 독본 수업시간에 배우는 게 전부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에서 이루어진 조선어 교육도 마찬가지여서 한글 맞춤법이나 문법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대구고보한글연구회 결성은 1928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벌어진 대구고보폭압동맹반대투쟁(大邱高普暴壓同盟反對鬪爭)의 영향이 컸다. 민족의 의미를 각인하고 문자 체계로서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글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대구고보한글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고보한글연구회는 1929년 10월 무렵 대구고등보통학교한순(韓錞)·강인만(姜仁晩)·이종하(李鍾河)·김임달·김재철·김영호·오용한·김병규·최재영 등 10여 명의 재학생이 한글 연구를 심화하기 위하여 만든 단체이다.

[변천]

대구고보한글연구회의 회원인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생 강인만·최재영 등은 경상북도경찰부에서 석방된 직후인 1929년 11월 7일 비밀결사 백망회(白望會)를 결성하여 학생운동을 펼쳤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고보한글연구회는 1929년 10월 6일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莊觀洞) 이종하의 집에서 모임을 가진 뒤 여러 차례 한글 연구를 위하여 회합하였다. 1929년 11월 2일 대구고보한글연구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경상북도경찰부(慶尙北道警察部) 고등계 형사들이 한글연구회 회원들의 거처를 수색하고 연구 자료를 압수하였으며, 이종하·한순·김임달·강인만·최재영 등을 체포하였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대구고보한글연구회 학생들은 이틀간의 조사를 받고 학부형들이 학생들의 근신 및 책임을 진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대구고보한글연구회는 1929년 12월 20일 학교 당국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그 뒤 1930년 5월에 대구고등보통학교 3학년생 20여 명이 ‘언문연구회’ 결성을 신청하였으나 학교 당국은 허가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고보한글연구회는 1920년대 후반 대구고등보통학교의 학생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한글 연구를 통하여 민족문화 전통을 계승하고 민족 정체성 강화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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