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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李德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05
한자 李德柱
영어공식명칭 Lee Dukj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6년 2월 10일연표보기 - 이덕주[李德柱]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10월 - 이덕주[李德柱]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 중퇴
출생지 대명동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우리동맹 서무부 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덕주(李德柱)[1906~?]는 1906년 2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농업에 종사하던 중 항일 비밀결사 우리동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덕주는 1926년 10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8년 9월 8일 상술상(尙戌相)·조은석(趙銀石)·김영수(金永壽)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우리동맹을 결성하였다. 우리동맹은 ‘우리들은 마르크스주의적 혁명 전술을 함양한다’라는 강령을 채택하고 동지 확보와 비밀 절대 준수 등을 규약으로 정하였으며, 조직 체계를 서무·정치·문화·선전·조직·조사·연구의 7개 부서로 구성하였다. 이덕주는 서무부 위원, 상술상은 정치·문화부 위원, 김영수는 선전·조직부 위원, 조은석은 조사·연구부 위원을 맡았다. 이덕주 등은 매주 1회 정례회를 열어 공산주의 이론 연구와 선전 활동을 진행하였다.

1928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일본인 교사의 이순신(李舜臣) 장군 폄하 발언이 발단이 되어 대구고보폭압정책반대동맹을 중심으로 동맹휴교 투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대구 지역 학생 비밀결사 조직이 발각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이덕주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덕주는 1929년 10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고, 1930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4년형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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