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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동 풍물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5990
한자 檢丹洞 風物契
영어공식명칭 Geomdan-dong Pungmulgy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장소 검단동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 지도보기
성격 협동 조직
노는 시기 정월 초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서 풍물놀이를 위하여 조직된 협동 조직.

[개설]

검단동 풍물계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 지역에 있었던 풍물계이다. 정월 초에 마을 동신제를 지낼 때 풍물을 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고 한다.

[연원]

검단동 풍물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놀이 도구 및 장소]

검단동 풍물계는 매구[꽹과리], 징, 북, 장구, 소북으로 구성되었고 잡색은 구성하지 않았다. 잡색은 악기를 연주하는 치배 외에 놀이의 흥을 돋우려고 대포수, 할미, 파계승 따위로 분장하여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춤과 재담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놀이 방법]

검단동 풍물계는 주로 마을에 동신제를 지낼 때 풍물을 친다. 마을의 제당은 당산과 당집이 있었다. 검단동 마을이 전부 초가집이었을 때 당집은 마을의 수호신이 모셔진 곳이기 때문에 마을의 집보다 좋게 기와집으로 지었다. 당집 안에는 초석 자리를 펴 놓고 흰 종이로 금줄을 쳐 놓았다.

동신제 때는 제관을 선출하고자 정월 초사흗날 낮 12시 무렵부터 풍물을 치면서 동민 모두가 당산으로 올라가서 당내림굿을 한다. 당신이 내리면 당대를 따라 제관이 선출된 집으로 간다. 당이 내린 집은 동신제를 지내는 날인 정월 열나흗날까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제관이 마시는 우물에는 금줄을 쳐 두고 다른 사람은 먹지 못하게 한다. 제사날은 찬물에 목욕재계한 다음, 새벽 1시 무렵에 제사를 지낸다. 동신제는 마을 공동체의 안위와 평안을 기원하며 유교식 절차로 진행되었고, 검단동 풍물계는 여기에 놀이의 성격을 가미하고자 신명나게 연희하였다. 검단동 풍물계는 동신제를 지내기 전 당산에서 당내림굿을 할 때 풍물을 치고, 동신제를 지낼 때 풍물을 치며, 동신제가 끝난 후 마을의 집집마다 방문하여 지신밟기를 하면서 풍물을 친다. 성주풀이-조왕풀이-장독풀이-우사풀이-우물풀이-디딜방앗간풀이의 순으로 지신을 밟아 주되, 검단동 풍물계의 풍물놀이 자체는 일정한 연희 순서를 가지지 않고 버꾸놀음 정도만 따로 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검단동 주민들의 집이 초가일 때도 당집이 기와집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동신의 영험에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신제는 검단동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였고, 이 제의 여하에 따라 동민 전체의 안위가 달려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풍물계는 마을의 수호와 질병을 막고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기원을 담은 풍물소리로써 신명을 돋우는 역할을 하였다.

[현황]

검단동 풍물계는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1960년대에는 당내림굿과 지신밟기를 하는 풍물계가 운영되어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이후 마을 회의에서 풍물을 금지한 적이 있고, 그 후 양력설에 풍물을 치라는 등의 외부적인 영향으로 풍물계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 이후 대구검단산업단지가 생기면서 마을도 급격히 변화하였고, 주민의 고령화, 이주 등으로 풍물계는 경로당 노인들을 중심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 갈 뿐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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