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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유현 통강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36
한자 大邱儒賢 通講錄
이칭/별칭 『통강록(通講錄)』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605년연표보기~1613년연표보기 - 『대구유현 통강록』 저술
발견|발굴 시기/일시 2007년 - 『대구유현 통강록』 백불암 종가에서 발굴
소장처 백불암 종가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지도보기
발견|발굴처 백불암 종가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지도보기
성격 전적
저자 연경서원 유사(有司)
권책 1책 21장 필사본
규격 24㎝×36㎝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유림들이 연경서원과 선사재에서 강학한 내용을 기록한 책.

[저자]

『대구유현 통강록』연경서원의 유사(有司)가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편찬/간행 경위]

대구 지역의 유생들은 1602년(선조 35)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연경서원을 중건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학(講學)을 하였으며, 1605년에 이르러 통강을 실시하였다. 통강(通講)이라는 말은 ‘강(講)을 통과(通過)하였다’는 의미이며, 성적을 평가하는 것을 고강(考講)이라고 한다. 강이란 ‘외운다’라는 의미이다.

매월 초하루나 보름을 기준으로 월 1회 서원(書院)이나 서재(書齋)에 학생들을 소집하여 강을 하여 평가하였으며,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이 주관하였다. 『대구유현 통강록』에 기록된 평가는 7등급이다. 통강을 한 인원은 학생 117명, 지도 스승 4명을 포함하여 121명이다. 지도 스승은 대구 지역 제2세대 성리학자인 서사원(徐思遠), 손처눌(孫處訥), 곽재겸(郭再謙), 류요신(柳堯臣)이다. 기간은 1605년부터 1613년까지 7년간이다. 선조의 국상 기간인 1609년과 1610년에는 통강이 중단되었다. 강학을 한 장소는 연경서원(硏經書院)서사원의 선사재(仙査齋)이다.

『대구유현 통강록』영조~정조 때 대구의 유학자인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1705~1786]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으며, 책 표제에는 ‘통강록(通講錄)’으로 되어 있다. 구본욱이 2007 년에 백불암 최흥원의 종손인 최진돈(崔晉惇)을 통하여 입수하여, 2012년에 탈초(脫草) 정자화(正字化)하고 『퇴계학논집』을 통해 학계에 보고하였다. 이때 대구의 거의 모든 유생들이 참여한 점을 고려하여 『대구유현 통강록』이라고 하였다.

『대구유현 통강록』백불암 종가에 소장된 것은 백불암의 5대조인 대암(臺巖) 최동집(崔東㠍)[1586~1661]이 대구 성리학의 제3세대로 강학에 참여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형태/서지]

『대구유현 통강록』의 크기는 가로 24㎝ 세로 36㎝이고, 표지 2장 본문 19장 38면으로 모두 21장이다. 본문은 한지(韓紙)에 달필(達筆)[細筆]의 행초서(行草書)로 30회 통강이 7첩(帖)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대구유현 통강록(大邱儒賢通講錄)』은 대구 지역의 유생들이 공부한 것을 7등급으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7등급은 순통(純通), 통(通), 순략(純略), 략(略), 순조(純粗), 조(粗), 불(不)이다.

[의의와 평가]

『대구유현 통강록』은 조선 시대 서원 교육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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