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424
한자 都錫壎
영어공식명칭 Do Seokhun
이칭/별칭 화응(和應),금파(錦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도성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2년연표보기 - 도석훈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69년 - 도석훈 정시 문과 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869년 - 도석훈 성균관전적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73년 - 도석훈 사직 후 낙향
몰년 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 도석훈 사망
출생지 용산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용산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한성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한성 - 서울특별시
묘소|단소 도석훈 묘소 - 경상북도 영천군 청통면 애련리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성주(星州)
대표 관직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

[정의]

개항기 대구 출신의 문관.

[가계]

도석훈(都錫壎)[1812~187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화응(和應), 호는 금파(錦坡)이다. 낙음(洛陰) 도경유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도필탁(都必卓)이다. 아버지는 도대규(都大珪)이고, 어머니는 김이인(金利仁)의 딸 선산김씨(善山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곽순익(郭舜翼)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서근(徐根)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활동 사항]

도석훈은 1812년(순조 12)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에서 태어났다. 1869년(고종 6)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이후 사헌부의 감찰과 지평, 사간원의 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다.

도석훈은 당시 섭정이던 흥선대원군이 공덕돈(孔德墩)으로 물러나 있을 때 고종에게 흥선대원군을 모셔올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고종의 윤허를 받지 못하자 1873년(고종 10)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도석훈은 1877년 사망하였다.

[묘소]

도석훈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