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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59
한자 李埉
영어공식명칭 Lee Hyub
이칭/별칭 대방(大防),율포(栗浦)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6년연표보기 - 이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23년 - 이협 생원시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735년 2월 - 이협 대구 판관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39년 7월 - 이협 대구 판관 이임
활동 시기/일시 1746년 - 이협 상주목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769년연표보기 - 이협 사망
부임|활동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덕수(德水)
대표 관직 대구 판관

[정의]

조선 후기 대구판관을 역임한 문관.

[가계]

이협(李埉)[1696~1769]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대방(大防), 호는 율포(栗浦)이다. 할아버지는 대간 이혜(李嵆)이고, 아버지는 이희남(李喜楠)이다.

[활동 사항]

이협은 1696년(숙종 22)에 태어났다. 1723년(경종 3)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1731년(영조 7)에 순릉참봉(純陵參奉)에 임명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35년 2월 대구판관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대신들이 조정에 아뢰어 연임하게 되어 1739년 7월까지 대구판관으로 근무하였다. 『대구읍지』에서 특별히 선정을 베푼 관리들을 기록한 항목인 환적(宦蹟) 항목에 이협의 선정에 대하여 기록하였는데, “자식을 돌보는 듯한 은혜로운 정치를 행하고 유가의 가르침에 젖을 수 있는 교화를 펴니, 대신이 조정에 아뢰어 연임하게 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잊지 못하여 생사당(生祠堂)을 세웠으나 조정의 명으로 훼철하였다”라고 하였다.

이협은 1739년 7월 청도군수를 거쳐 광주목사·나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746년 9월에는 상주목사로 부임하였는데, 상주 지역 사람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753년에 삼척부사를 지냈는데, 태조 이성계가 하사했다는 허리띠를 발견하여 임금에 상신하고 숙마 1필을 하사받았다. 1765년 1월 통정대부에 올랐고, 1769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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