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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처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09
한자 申處華
영어공식명칭 Shin Cheohwa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부임|활동지 대구부 - 대구광역시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대표 관직 대구판관

[정의]

조선 후기 대구판관을 역임한 문관.

[가계]

신처화(申處華)[?~?]의 가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만가보(萬家譜)』와 남구만(南九萬)이 쓴 「당진현감송공묘지명(唐津縣監宋公墓誌銘)」에 따르면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부인은 송광순(宋光洵)[1632~1682]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라고 추정된다.

[활동 사항]

신처화는 17세기 무렵에 대구판관으로 재임 시 청렴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크게 덕망이 있었다. 『대구읍지(大丘邑志)』의 지역을 다스린 관리를 기록한 ‘영선생(營先生)’ 항목 중 판관 부문에서 아홉 번째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고 음관(蔭官)으로 벼슬을 하였다는 의미로 남반(南班)이라고만 표기해 두었다. 일반적으로 남반은 궁중에서 시중을 드는 내관이거나 가문에 결함이 있는 양반 자제들이 7품 이하의 벼슬을 하는 경우를 지칭하지만, 『대구읍지』에는 41명의 판관 중 문과 급제자 5명과 급제 여부 미기록자 5명을 제외한 31명을 남반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대과 급제자가 아니면 모두 남관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구 지역 사람들이 신처화의 선정을 기려 생사당(生祠堂)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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