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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두산동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88
한자 大邱 斗山洞 遺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501|두산동 967-2
시대 선사/청동기,조선/조선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청동기시대 - 대구 두산동 유적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9월 22일~12월 15일 - 대구 두산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두산동 유적 -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501|967-2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두산동 유적(大邱斗山洞遺跡)은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으로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로 도로 확장공사와 관련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3년 9월 22일부터 2003년 12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기, 수혈 유구 3기, 구상 유구 1기, 기둥구멍 다수, 조선시대 도로 유구 1기가 확인되었고,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편, 돌칼 조각, 박편, 조선시대 분청사기 및 기와 조각 등 2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분지의 동남쪽에 있는 용지봉[634m]에서 대구분지를 향하여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상에 법니산[333.9m]이 있다. 법니산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면 일제강점기 조성된 수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수성지의 북쪽에 대구 두산동 유적이 있다. 대구 두산동 유적이 있는 곳은 용지봉대덕산[599.5m]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범어천에 의하여 형성된 선상지성 충적지의 선단부에 해당한다. 서쪽으로는 신천변 충적지에 남북으로 길게 고인돌군과 주거군이 조성되어 있는 대구 신천변 유적이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501번지와 967-2번지에 해당한다.

[형태]

대구 두산동 유적의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1기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 원형이며, 중앙에 수혈과 양 기둥구멍이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수혈유구는 1·2호는 장방형을 띠고, 3호는 부정형을 띤다. 1호와 2호는 양쪽 단벽 중앙에 기둥구멍이 설치되어 있고, 바닥에 목탄이 확인되는 점에서 임시 주거나 작업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주혈은 산재되어 있고, 정형성을 띠지 않는다. 유물은 주거지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민무늬토기 조각과 돌칼 조각, 부리형석기, 박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도로유구는 남서-북동향으로 진행하다가 조사 지역 중앙부에서 북서 방향으로 90° 꺾이는데, 조사 지역 외곽으로 계속 이어진다. 도로의 너비는 2.5~3m이며, 중앙부에 수레를 끌었던 가축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다수 남아 있다. 유물은 분청사기 바닥 조각과 어골문(魚骨文)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두산동 유적 발굴 조사 후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무학로로 불리는 왕복 10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 신천 지역 동안의 충적지에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주거 유적과 무덤 유적이 있는데, 대구 파동 고인돌, 대구 상동 고인돌군, 대구 중동 고인돌, 대구 상동 유적이 대구 신천 동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대구 두산동 유적은 대규모 마을과 무덤 유적의 배후에 형성된 소규모 생활 유적의 일부라고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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