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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국우동 건물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59
한자 大邱 國優洞 建物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구리로 142-1[국우동 1081]|학남로15길 3-8[국우동 1082]|학남로15길 4[국우동 1083]|국우동 1084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려시대 - 대구 국우동 건물지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2월 4일~7월 31일 - 대구 국우동 건물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국우동 건물지 - 대구광역시 북구 구리로 142-1[국우동 1081]|학남로15길 3-8[국우동 1082]|학남로15길 4[국우동 1083]|국우동 1084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고려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국우동 건물지는 고려시대의 생활 유적으로, 칠곡3택지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8년 2월 4일부터 1998년 7월 3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 적심건물기 10기, 고상건물지 3기, 수혈건물지 2기, 담장 1기, 화덕자리 18기, 수혈 9기, 도랑 1기와 고려시대 이후의 삼가마 3기가 확인되었다. 일휘문 막새기와 등 와당(瓦當), 큰항아리[大壺], 시루, 동이, 병, 청자, 백자, 녹청자, 동곳, 숟가락, 저울추, 청동용기 등 520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금호강 북쪽에는 팔거천 하류역에 형성된 충적지 칠곡 분지가 있다. 칠곡 분지는 남북으로 긴 세장한 형태를 띠고 있다. 대구 국우동 건물지는 칠곡 분지 북쪽 가장자리 팔거천 동안에 있다. 북동쪽에 있는 도덕산[660m]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 사이를 흐르는 반포천의 북안의 충적지와 구릉 말단부에 해당한다. 북쪽에는 호국로가 조성되어 있고, 북서쪽에 연접하여 대구 학정동 유적, 남쪽으로 인접하여 대구 국우동 유적이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 1081~1084번지가 해당한다.

[형태]

대구 국우동 건물지는 최소 2차에 걸쳐서 전체적으로 증축되었고, 증축 과정에서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1차 건물지와 주변을 황색 점토를 성토하고 2차 건물을 축조하였다. 2호 건물지 동편으로 담장이 돌아간다. 건물의 배치는 1호 건물지를 중심으로 동쪽에 2·7호, 북서쪽에 5·8·9·10호, 남동쪽에 3·4·6호 건물지가 있다. 모두 한 건물군의 구획 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북서쪽에 있는 건물지는 다수의 화덕자리와 시설물이 확인되어 생산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건물지는 측면이 1칸 구조이며, 길이에 비하여 폭이 매우 좁고, 내부에 화덕자리를 갖춘 건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건물지 내부와 주변에서 화덕자리와 대형 숫돌이 많이 확인되는 점에서 작업과 관련되는 공방 시설로 파악된다.

건물지는 평면 배치에서 중복이 없는 점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 연계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모두 비슷한 시기의 복합 건물군으로 생산 시설을 수용한 건물로 파악된다. 건물지와 관련되는 화덕자리는 18기인데, 타원형, 장방형, 원형의 형태로 확인되었고, 1호 화덕자리에서는 도가니가 출토되었다.

유물은 기와와 자기류가 주를 이루며 금속 제품도 일부 출토되었다. 막새는 귀목문 막새가 대부분으로 모두 같은 거푸집[范]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평기와는 어골문 계열이 주종을 이루며 명문화도 두 종류 확인되었다. 토기는 시루, 항아리[壺], 독[甕] 등 생활 용기와 건물지의 진단구와 저장시설로 추정되는 큰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자기는 순청자, 상감청자, 철화청자 등 청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기종은 대접, 병, 종지, 탁잔, 잔 등 일상생활에 사용된 기물들과 함께 청자향완, 타구 등이 소량 출토되었다. 백자와 녹청자는 소량 확인된다. 금속 유물로는 은제 동곳, 숟가락, 저울추, 청동용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국우동 건물지는 발굴 조사 완료 후 택지 개발사업이 진행되어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주변으로도 개발이 진행되어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대구 국우동 건물지 유적은 건물지의 적심 배치 양상과 함께 출토되는 유물을 보면, 고려시대 후기의 관청 건물지와 공방지로 추정된다. 당시 생산 및 소비로 이어진 기와, 자기 등의 물품 수급관계 및 교역 상황을 비교할 수 있고, 칠곡 지역의 생활상 및 건축 구조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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