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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24
한자 東洋拓殖株式會社 大邱出張所
영어공식명칭 Daegu Branch of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이칭/별칭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동척 대구지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221[동문동 4-1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 9월 15일연표보기 -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 설치
개칭 시기/일시 1920년 4월 1일연표보기 -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으로 승격
최초 설립지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221[동문동 4-16]
현 소재지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221[동문동 4-16]지도보기
성격 식민통치기구|식민지 착취 기관

[정의]

1910년 대구광역시에 설치된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속 지점.

[설립 목적]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법률 제22호]에 의거하여 설립되었다. 표면적 목적은 농사 개량과 농업기술 향상이었지만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에게 정착 지역의 저렴한 토지와 편의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서였다.

[변천]

일제는 1908년 3월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제정한 뒤 1908년 8월 27일 대한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공포하였다. 1908년 12월 28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창립 총회에는 창립 위원 116명 가운데 한국인 측 위원 33인, 일본인 측 위원 83인이 참석하였다. 이때 대구 대표로 정재학, 이병학, 정해붕 3명이 참여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9년 1월 29일 경성에 본사를, 1910년 9월 15일 대구를 포함한 지방 3곳에 지점 또는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東洋拓殖株式會社大邱出張所)는 1910년 9월 15일 대구부 동문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 4-16] 지금의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 자리에 설치되었다. 1910년 4월 1일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으로 승격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의 관할 지역은 달성, 경산, 청도, 영천, 경주, 영일, 상주, 선산, 김천, 칠곡, 의성, 영덕 등 주로 경상북도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가 개소 당시에 관리한 토지 면적은 논 1,095정보[1085만 9504㎡]·밭 413정보[409만 5867㎡]·잡종지 85정보[84만 2975㎡] 등 총 1,593정보[1579만 8347㎡]였으며, 환산 가격으로는 24만 8942원에 이르렀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의 주요 업무는 대구·경상북도 지역 일본인의 이민 사업[일본인 이민자의 정착에 필요한 제반 상황]과 농업 경영 지원 등이었다. 이민 사업은 가옥 증개축, 학교·위생 시설 설치 및 관리, 일본인의 경제 상황 파악, 이민자 가족의 집단 이주 관리, 이주민과 조선인의 관계 관리 등이었다. 농업 경영 지원은 경종법(耕種法) 개량, 토지 관개, 생산물 증가, 부업 등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민자가 정착한 지역의 농업경제, 지방 경제, 지방 사회에 미친 영향력도 파악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농업과 농민에 대한 수탈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1920년대와 1930년대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소작쟁의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요 요인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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