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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헌병분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85
한자 大邱憲兵分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8년 3월연표보기 - 대구헌병분대 신설
성격 기관단체

[정의]

개항기 대구광역시에 신설된 일본 군대 조직.

[개설]

대구헌병분대(大邱憲兵分隊)는 1905년 9월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러·일 간에 맺은 강화조약인 포츠머스조약을 계기로 편성된 주둔군 헌병대에서 비롯되었다. 주둔군 헌병대는 대구를 비롯한 서울·부산·인천·평양 등 12개 지역에 헌병대 분대를 설치하고, 그 밑에 56개의 헌병분견소를 두었다. 1906년 3월 주둔군 헌병대는 통달(通達) ‘제한 주차 각 부대 요원 정리의 건’에 따라 일본 육군을 대신하여 헌병분견소를 32개소로 축소하였다.

1906년 10월 헌병 조례가 개정되면서 주둔군 헌병대는 제14헌병대로 개편되었다. 대구는 제14헌병대 제3분대로 배치되었다. 1907년 한일신협약 이후 제14헌병대는 다시 주둔군 헌병대로 환원되었다. 이때 대구는 부산 분대에 속하였다가 1908년 3월 부산헌병대가 폐지되면서 대구헌병분대가 신설되었다.

[설립 목적]

대구헌병분대는 한국 침탈을 목적으로 대구에 설치된 일본 군대이며 식민 통치의 중심 기구로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군사, 경찰 사무를 담당하였다

[변천]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맺기 직전 일본은 한국의 경찰권을 강탈하고 군사 및 경찰 사무 등을 담당하는 일본 헌병대를 도처에 배치하였는데, 대구에는 대구헌병대 본부와 왜관헌병분대 대구분견소가 설치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헌병분대의 주요 사업과 업무는 한국의 자존과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에 저항하는 정당한 항거를 탄압함으로써 일제가 한국을 ‘병합’하기 위한 무력 기반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구헌병분대는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 이후에도 계속 주둔하면서, 헌병 경찰 제도를 통한 무력적 식민 통치의 기반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헌병분대는 식민 통치와 무단 통치의 식민 탄압 기구로서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위한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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