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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51
한자 丘火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1월연표보기 - 구화회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28년 5월연표보기 - 구화회 해산
개칭 시기/일시 1928년 5월연표보기 - 구화회에서 붉새회로 개칭
성격 학생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항일 단체.

[설립 목적]

구화회(丘火會)는 사회과학의 연구 및 선전 활동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를 목적으로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변천]

1927년 11월 결성된 구화회는 1928년 5월 해산한 뒤 비밀결사 붉새회[일명 서광회]로 개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구화회는 1927년 11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중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황보선(皇甫善)이 동교생 김성칠(金聖七), 정소수(鄭小秀) 등과 함께 결성하였다. 구화회는 강령을 지(知), 각(覺), 약(躍)으로 정하고 서무부, 문화부, 재무부의 3개 부서를 설치하였다. 구화회 회원들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노예교육으로 규정하고 조선인 중심의 민족교육 실시와 민족독립을 위하여 2주에 한 번 토요일마다 회합을 가지면서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구화회는 이순신을 적으로 규정한 일본인 교사의 발언으로 촉발된 ‘대구고보동맹휴교투쟁’을 적우동맹과 함께 벌였다. 적우동맹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대구농업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와 대구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1928년 2월 26일 결성한 학생 비밀결사였다. 구화회는 대구고보동맹휴교투쟁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 반대와 민족교육 실시 요구를 관철하려 하였지만 투쟁 방법을 놓고 적우동맹과 갈등을 벌인 끝에 1928년 5월 해산한 뒤 붉새회로 개편하였다.

[의의와 평가]

구화회는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대하고 민족교육 실시를 요구하는 운동을 펼쳐 학생운동이 민족운동으로 확장되는 데 한몫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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