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38
한자 八居縣|八莒縣
이칭/별칭 칠곡(七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팔리현에서 팔거현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640년 - 팔거현이 칠곡도호부로 편입
성격 행정구역

[정의]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를 관할한 고려, 조선 전기의 지방 행정구역명.

[개설]

팔거현(八居縣, 八莒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고려시대, 조선 전기의 지방 행정구역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양주(良州) 수창군(壽昌郡) 조에 팔리현(八里縣)은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고려 때]의 팔거현(八居縣)이라고 되어 있다. 또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경상도 경산부 팔거현(八莒縣) 조에는 고려 초에 ‘팔거(八居)’로 바꾸었고[후에 거(居)가 거(莒)로 바뀌었다], 1018년(현종 9)에 [경산[현 성주]에] 내속(來屬)하였으며, 별호는 칠곡(七谷)이라고 하였다.

[명칭 유래]

신라 수창군 팔리현을 고려 초, 즉 940년(태조 23)에 팔거현으로 개명하였다. ‘팔거(八居)’는 점차 ‘팔거(八莒)’로 표기되어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는 ‘팔거현(八莒縣)’이 표제어로 되어 있다. 별호는 칠곡(七谷)이다.

[형성 및 변천]

1018년(고려 현종 9)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경산부(京山府)[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의 속현이 되었다. 임진왜란 후인 1640년(인조 18)에 가산성(架山城)의 읍명을 칠곡부(漆谷府)로 정하고 윤양(尹瀁)을 부사로 삼으면서 결국 팔거현의 영역이 칠곡도호부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명면에서 발원한 팔거천이 남쪽으로 흘러 금호강(琴湖江)으로 들어간다. 읍치 동쪽에 함지산(函芝山)[287.7m]이 있는데 함지산팔거산성(八莒山城)이 있다. 북쪽에는 팔공산(八公山)에서 이어진 가산(架山)[901.7m]이 있다. 가산에 임진왜란 후에 가산성이 축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대로가 가산 옆 소야고개를 넘어 팔거천을 따라 대구로 이어졌다.

[현황]

관할구역상 조선 후기 칠곡도호부의 영역으로,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국우동, 도남동, 관음동, 동천동, 읍내동, 학정동, 동호동, 태전동, 매천동, 팔달동, 금호동, 사수동,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에 해당한다. 중심지는 1819년(순조 19)에 칠곡부의 치소가 된 ‘구읍(舊邑)의 팔거창(八莒倉)’, 즉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으로 추정된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